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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인권위도 언론법 제동…"헌법상 언론자유 위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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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언론의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법률에서 제시하는 개념이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탓에 부패나 비리를 드러내는 보도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중과실 추정 조항은 삭제하되, 입증 책임을 분배하기 위한 별도의 조항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가 기관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1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13일 전원위원회에서의 격론을 통해 결정된 '언론 중재 및 피해 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공표했다. 인권위의 이번 결정문은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전달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기관 등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허위·조작 보도를 통해 재산상 손해를 입히거나 인격권의 침해 또는 그 밖의 정신적 고통을 발생케 한 경우 피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징벌적 손해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인권위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담고 있는 '허위·조작 보도' 개념과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이 모호하다고 결론 내렸다.

[최희석 기자]

국가기관도 與 '언론법 독주' 경고…"허위·조작보도 개념 모호"

인권위, 언론법 조목조목 반박

"진실·허위보도 가리기 어렵고
고의·중과실 추정요건도 모호"

與, 언론중재법 수정안 제시에
野 "독소조항 여전한 개악법안"

매일경제

여야 의원 및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언론중재법 협의체가 17일 오후 국회에서 제8차 회의를 열고 핵심 쟁점 조항들을 논의하고 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기존 방안에서 다소 완화한 내용의 수정안을 제시하며 협상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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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여당이 언론규제법을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가 처음으로 비판 의견을 내고 제동을 걸었다. 국가 공식 기관도 언론규제법이 헌법에 보장된 언론 자유를 위축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은 집권 여당이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규제법이 얼마나 큰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인권위는 17일 언론중재법에 대해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표명했다. 인권위가 판단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문제점은 크게 3가지다. 허위·조작 보도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것과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이 모호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뉴스 포털 등 매개 채널에 대한 규제가 과도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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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허위·조작 보도의 개념에 대해 개정 법률안은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언론, 인터넷 뉴스 서비스,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을 통해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라고 규정한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권력에 대한 감시 통제의 기능이 주된 목적 중 하나인 언론 보도는 그 특성상 확인 가능한 사항을 중심으로 해당 사안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거나 쟁점화를 통해 사회문제로의 여론을 형성하는 경우가 빈번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면서 "기자가 일부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나름의 검증을 거쳐 기사를 작성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사실 확인이 미진했거나 내용에 일부 오류가 있는 경우, 어디까지를 진실성을 갖춘 보도이고 허위의 사실에 기반한 보도로 볼 것인지 명확히 확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인권위는 그간 논란이 됐던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해 "표현의 자유에 근거해 허위·조작 보도로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적 요청을 구체화하기 위한 수단, 즉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의 명예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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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언론중재법을 놓고 공회전을 거듭하던 여야가 고의·중과실 규정을 삭제하겠다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여당은 독소 조항으로 지목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열람차단청구권까지 수정한 대안을 제시했다. 다만 여당이 해당 독소 조항을 수정해서라도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어 남은 협의 기간 중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17일 오후 언론중재법 심의를 위한 여야 8인 협의체가 8차 회의를 열고 논의를 이어 간 가운데 민주당은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여당에서 고의·중과실 추정을 양보하면서 남은 핵심 쟁점은 징벌적 손해배상과 열람차단청구권으로 압축됐다. 전날 송 대표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TV 토론에서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을 삭제하려 한다"고 말했다.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민법상 대원칙인 원고의 피해 입증 책임을 언론사에 전가하는 것이란 지적이 제기돼 왔다. 아울러 언론단체는 고의·중과실 규정이 모호하게 규정돼 있어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며 비판해 왔다.

민주당은 열람차단청구의 대상을 당초 언론 보도 등이 진실하지 않거나, 사생활의 핵심 영역을 침해하거나, 인격권을 계속적으로 침해하는 경우로 규정했으나, 사생활의 핵심 영역을 침해하는 경우로만 국한했다. 이에 대해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은 여야협의체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이 제안한 수정안은 개악"이라며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목표가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전 의원은 "민주당이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에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겠다고 한다"며 "허위 조작 보도가 더 나쁘냐,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가 더 나쁘냐"고 비판했다. '진실하지 아니한 보도'를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으로 할 경우 범위가 더 넓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입증 책임을 여전히 언론사에 돌렸다는 점도 꼬집었다.

한편 사실 적시 명예훼손 폐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1인 미디어 규제, 포털 공정화 등 언론중재법과 함께 투트랙으로 진행 중이던 언론 개혁 과제들은 당분간 뒤로 밀릴 전망이다.

[최희석 기자 / 이희수 기자 / 최예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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