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오커스 날벼락 맞은 프랑스…"미국이 등에 칼꽂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등 뒤에서 칼을 꽂은 것이나 다름없다. 호주와의 신뢰 관계가 배신당했다."

대중 견제를 위해 출범한 안보 동맹 '오커스(AUKUS)'가 심상치 않은 후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영국·호주 3국이 연합한다는 소식에 중국이 예상대로 크게 반발하고 나선 가운데 프랑스와 유럽연합(EU)도 이번 발표에 실망감을 나타내며 미국에 등을 돌렸다. 특히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프랑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이번 오커스 결성에서 영국과 함께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호주 정부는 프랑스 방산 업체 나발그룹에서 디젤 잠수함 12척을 공급받기로 한 초대형 계약을 일시에 파기해버렸다. 나발 측이 지불받기로 한 금액은 무려 560억유로(약 77조5800억원)에 달해 '세기의 계약'으로 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격분한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16일(현지시간)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의 행태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며 워싱턴을 맹비난했다. 르드리앙 장관은 "동맹국 간에 할 일이 아니다"면서 "이번 결정이 잔혹하고 일방적이며 예상 불가능했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이어 프랑스가 이번 사태에 맞서 싸울 것이라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해명이 필요하고 계약서도 있다. 호주인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갈지 말해야 할 것"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이미 미국·프랑스 양국 간에는 냉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주미 프랑스대사관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 프랑스가 참전했던 체사피크만 해전의 240주년 기념 행사를 17일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돌연 취소했다.

필리프 에티엔 주미 프랑스대사는 오커스 출범을 뉴스 보도로 먼저 알게 된 후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연락이 왔다고 폭로했다. 제라르 아로 전 주미 프랑스대사는 트위터에 "전 세계가 정글이라는 뼈아픈 사실을 프랑스가 방금 깨달았다"면서 "영국·미국에 뒤통수를 맞았으며 인생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씁쓸함을 표했다.

이번 동맹에서 소외된 EU도 독자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감행한 영국만이 유일하게 오커스 연합 대상이 된 점도 반감을 산 것으로 보인다.

주제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이날 중국 견제를 목표로 한 인도·태평양 협력 강화 전략을 발표했다. 보렐 대표는 "다른 이들이 그렇듯 우리도 우리의 힘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며 자체 전략을 내놓은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전략에는 대만과의 무역 관계를 강화하고 인도·태평양 해상에 병력을 추가하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EU와 프랑스가 대중 견제에 있어 지정학적 빅리그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최악의 날이었다"고 평가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 같은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진화에 나섰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유럽 국가들의 중요한 역할을 환영한다"며 "프랑스는 중요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프랑스가 오커스 발표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해명을 내놨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유럽의 반발을 예상했음에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호주와 영국을 택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CNN은 "EU가 수년간 미·중 사이 어딘가에 자리 잡기 위해 고민하면서 엄청난 소프트파워를 갖게 됐다"면서도 "대신 오커스는 전통적인 하드파워에 기반하기 때문에 EU가 어둠 속에 버려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사주간지 애틀랜틱은 "오커스 3국이 사실상 새로운 '앵글로' 군사동맹을 발표했다"고 진단했다.

중국의 반발도 계속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7일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다른 나라에 대한 설교를 용납할 수 없다며 맞받아쳤다. 시 주석은 "외부 세력이 어떤 구실로도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절대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발전과 진보의 앞날은 자기 손안에 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미국이 전방위로 동맹을 모아 중국을 압박하려는 움직임에 일침을 날린 것이다.

특히 중국은 미국이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지원하는 것은 북핵 문제 해결 등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반대 논리 확산에 나서는 모습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엔기구 주재 중국 대표부 왕췬 대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9월 이사회에서 "미국과 영국은 호주에 민감한 핵잠수함 기술을 수출했다"며 "이는 핵 수출을 지정학적 게임의 도구로 이용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미국과 영국의 이번 조치는 적나라한 핵확산 행위"라며 "한반도 핵 문제와 이란 핵 문제의 해결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향후 호주는 18개월간 영국과 미국에서 기술을 전수받아 최소 8척의 핵잠수함을 건조하게 된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핵잠수함 기술을 지원하는 것은 1958년 영국 이후 처음이다.

[베이징 = 손일선 특파원 / 서울 = 고보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