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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미얀마 편지⑫] 민주진영, 군부에 ‘선전포고’했지만…잠잠한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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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7일 미얀마 양곤에서 군인들이 차에 타고 이동하고 있다. 양곤/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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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전 8시께 미얀마 민주진영이 꾸린 국민통합정부(NUG)의 두와라시라 임시 부통령이 발표문과 담화를 통해 미얀마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올 2월 군부의 쿠데타 이후 8개월간의 폭정으로 무고한 국민들이 숨지고 재산을 침탈당했는데, 이제 민주진영이 무력 저항을 통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군부를 뿌리 뽑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군부를 향해 선전포고를 한 것입니다.

국민통합정부는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이동을 자제하고 생필품과 의약품을 준비하라고 요구해, 많은 희생자가 나올 수 있음을 예고했습니다. 지난 2개월 동안 이곳은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아비규환을 겪었는데, 그 아픔이 채 가시기 전에 또다시 비상 상황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선전포고 이후 일주일이 지난 14일까지 경제 중심지 양곤은 경계가 더욱 삼엄해졌습니다. 시내 곳곳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도로를 달리는 군경 차량에서 삐져나온 총구는 하늘이 아닌 후방을 조준하고 있습니다. 제 지인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조금 안정되나 했더니 또다시 혼돈이 시작된다며 불안해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 선전포고가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말로만 끝난다면, 국민들의 실망이 커지고 국민통합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질 것 같아 우려됩니다.

소셜미디어에는 국민통합정부를 응원하는 글들이 이어지지만, 분위기는 금세 가라앉았습니다. 특히 양곤 시민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선전포고 첫날 시장에선 잠시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지만, 이튿날부터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미얀마 시민들이 무감각한 것인지 제가 민감한 것인지 혼란스럽지만, 코로나 사태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양곤에서는 그리 큰 동요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미얀마 국토 면적은 한국보다 6.5배 넓지만 대도시라 불릴 만 한 곳은 양곤과 제2 도시 만달레이 두 곳뿐입니다. 미얀마 국민 5천만명 중에 양곤과 만달레이에 사는 600만명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농촌에 살며 한 달에 우리 돈 10만~20만원을 벌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한 시간도 안 돼 논밭이 펼쳐지고, 도시와 도시를 이동할 때면 배를 타고 섬과 섬을 건너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래서 저는 미얀마를 “섬나라”에 비유해 부릅니다. 군부도 이런 지리·경제적 특성을 이용합니다. 미얀마 전체 경제 활동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양곤과 만달레이만 잘 통제하면 장기 집권이 가능하기 때문에, 두 도시의 관리에 힘을 쏟는 것입니다.

반면, 소수민족들이 주로 거주하고 무장조직이 꾸려진 산악의 작은 도시들은 무자비한 탄압의 대상이 됩니다. 산악 도시는 지형 특성상 외부와 차단돼 있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잘 알 수 없습니다. 군부는 전투기와 장갑차, 중화기, 병력 등을 대거 배치해 시민군 연합과의 교전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습니다. 산악 지역 작은 마을은 쑥대밭이 되고, 체포된 거주민 중 일부는 잔혹하게 처형되고 피신한 주민들은 난민이 됩니다.

쿠데타 이후 8개월 동안 지방에서는 이런 사건들이 빈번히 발생했습니다. 군부는 지난 10일 북서부 머궤주의 강고 지역에서 마을 한 곳을 불 질러 전소시켰고 청년 20여명을 시민군으로 간주해 살해했습니다.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하여 집단으로 화장하는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습니다. 도시민들은 이런 소식에 마음속으로 울분을 표현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소도시에서의 군부의 잔혹한 진압이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줬기 때문입니다.

군부는 국민통합정부의 선전포고를 낮잡아 보고 있습니다. 선전포고 다음 날 군부 대변인인 조 민 퉁 장군은 민주진영이 오는 14일로 예정된 유엔(UN) 총회에서 미얀마 군부 쪽 대표의 선발을 저지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 정도로 간주했습니다. 소수민족 무장단체 수장이 지난 7일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도 국민통합정부의 미흡함이 나타납니다. 그는 “국민통합정부의 선전포고는 당연히 지지하며 여기에 참여할 충분한 의지가 있다. 다만 (우리와) 사전 교감이 없었고 무기체계가 부족한 가운데 이뤄진 선전포고는 조금 아쉽다”고 했습니다.

희생이 없을 수 없겠지만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선전포고를 했다는 국민통합정부의 발표 내용이 빈말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월 쿠데타 이후 사망한 미얀마 시민 수는 1000명이 훌쩍 넘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유엔과 국제사회에 실망감이 크지만 이곳 사람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군부와 민주진영 모두 더는 국민을 희생의 대상으로 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양곤/천기홍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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