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제 현실화 시 '군부 수장=대통령' 가능성 ↑
23일 미얀마 군부 수장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국가행정평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글로벌 뉴라이트 미얀마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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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집권을 노리는 미얀마 쿠데타 군부가 총선에서 비례대표만 선출하는 변칙전술 카드를 뽑아들었다. 국민들의 저항을 한몸에 받고 있는 군 계열 정치세력이 정상적인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조치다. 독특한 방식의 비례대표제가 도입될 경우, 미얀마에서 군부의 독주를 막을 수단은 더욱 희박해질 가능성이 높다.
26일 미얀마 나우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군부 수장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은 지난 23일 수도 네피도에서 열린 국가행정평의회(SAC) 전체회의에서 "유권자 모두의 목소리가 더 잘 표현되도록 선거제도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군정은 다음 선거 전까지 모든 정당 세력과 협력해 직접선거를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수정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와 관련 군부는 지난 3월 군의 '꼭두각시'로 불리는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51개 친군부 정당의 '비례대표제 변경 요구안'을 수렴한 바 있다. 적어도 형식적인 절차를 거쳐, 향후 발생할 국제사회 비판을 방어할 논리는 구축한 셈이다.
비례대표제 도입의 파괴력은 독특한 미얀마의 정치제도가 있어 배가된다. 미얀마에선 국회의원 총선이 사실상 대선을 겸하고 있다. 전체 의원석(664)의 25%인 166석이 군부에 배정된 상황에서, 나머지 498석만 직접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 이렇게 구성된 국회는 개원 후 상하원 합동의회를 별도로 열어 여기서 뽑힌 최다 득표자에게 대통령직을 맡긴다. 앞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의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군부 할당 몫을 이겨내고 정권을 연속해 창출한 것도 모두 국민이 입후보자에게 투표권을 행사하는 직접선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직선 대신 군부의 입맛에 맞게 조정될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상황은 완전히 뒤집힌다. 다음 총선에서 비례대표제를 방어해낼 야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을 공산이 큰 이유에서다. 실제로 군부가 지난 5월 NLD의 정당 등록 폐기를 공언한 뒤, 현재 헌법재판소는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얀마 헌재는 군부에 철저히 예속돼 있다.
NLD 대신 현 민주세력의 중심인 국민통합정부(NUG)가 새로운 정당을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군부의 선관위가 이를 허가해줄 가능성은 극히 낮다. 여기에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킨 지 사흘 만에 흘라잉 사령관의 정년까지 폐지해뒀다. 정적은 제거하고 군정의 대통령 후보가 걸을 길은 미리 닦아 뒀다는 얘기다.
양곤의 한 정치평론가는 "군부가 지역과 민족 등을 적당히 절충한 비례대표 선출 기준을 내놓으면, 이에 동조할 군소정당은 얼마든지 나올 것"이라며 "정치적 속임수에 불과하지만, 비례대표제 도입은 민주진영의 의회 내 지배력 상실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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