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무 미술에세이 '벌거벗은 미술관'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많은 사람이 미술관이나 박물관 문턱이 높다고 여긴다. 일상과 분리된 공간의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절로 경건해진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미술이 어렵고 심각하다는 인식에 작품 속 인물들의 엄숙한 자세와 표정도 한몫한다고 말한다.
신간 '벌거벗은 미술관'에서 그는 왜 이렇게 미술은 심각한지, 초상화에는 왜 웃는 얼굴이 드문지 등 미술작품을 마주하며 고민하던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전통적인 초상화에서 웃는 얼굴이 별로 없는 데에는 기술적인 요인도 있다. 모델이 웃는 표정을 오랜 시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사진과 달리 초상화가 평생 한 장 남길까 말까 한 공식적인 그림이라는 점에서도 환히 웃기는 쉽지 않다.
저자는 시대적인 배경에 주목한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미술에 나타난 웃는 얼굴을 살펴보고, 한발 더 나아가 각 문명을 대표하는 표정을 탐구한다.
아파이아 신전의 죽어가는 전사상은 가슴에 박힌 창을 손으로 쥐고도 환하게 웃고 있다. 고대 이집트 람세스상,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마애삼존상 등 고대 미술에서는 우아한 미소가 자주 보인다.
그러나 '크리티오스 소년' 등 그리스 조각상에서는 미소가 사라진다. 특정한 개인을 연상시키는 것을 경계한 당시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결과다. 로마 시대까지 이어진 무표정한 초상 조각은 당시 유행한 금욕주의와도 닿아 있다.
시대가 흘러 미술품에 다시 미소가 번진다. 미술사의 대표적인 미소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비롯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중국 현대미술 작가 유에민쥔의 그림까지 시대를 담은 작품 속 표정을 소개한다.
한국미술경영학회 초대 회장인 저자는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사를 글과 강의로 풀어내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4개 장으로 구성된 이번 책은 강연을 바탕으로 썼다. 문명과 표정에 앞서 첫 장에서는 고전미술의 허상을 말한다. 석고상 그리기가 미술교육의 기본이 된 역사, 군국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문화 속에서 탄생한 그리스 조각이 서구에서 수천년 동안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 과정을 살핀다.
3장과 4장에서는 각각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싼 격동의 역사, 코로나19 사태와 미술을 다룬다.
각 장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큰 틀에서 미술과 인간이라는 주제로 만난다. 미술의 역사를 통해 저자는 '인간에게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다가간다.
양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미술을 통해 본 인간은 늘 방황하지만 그것에 도전해서 변화를 일으키는 자"라며 "우리는 미술의 역사를 명작들로 이어진 위대한 역사라고 알고 있지만, 도리어 실패와 미완성으로 이루어진 고뇌와 좌절의 역사"라고 말했다.
창비. 292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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