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 할머니 1991년 8월 14일 첫 ‘위안부 증언’
13일 ‘故 김학순 공개증언 30주년 학술대회’ 열려
“故 김학순 할머니, 20세기 가장 용감한 사람”
“다른 피해자 증언, 사회운동, 법적 소송 시작 계기”
지난달 24일 일본 교토부(京都府) 교토시의 한 시설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된 가운데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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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김학순 할머니는 20세기의 가장 용감한 사람들 중 한 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의 몸에 각인된 공포를 영원히 끝내기 위해 그 유산을 21세기에도 지속해야 합니다.”
13일 서울 마포구 청년문화공간JU동교동에서 열린 ‘고(故) 김학순 공개증언 3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 미국 코네티컷대의 알렉시스 더든 교수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1930~1940년대 일본 정부에 의해 자행된 군사 성노예 제도는 인신매매·강간을 목적으로 한 가장 거대한 사례”라며 “수십만명의 피해자와 생존자를 대변하는 개인의 증언 가치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14일은 김 할머니가 1991년 8월 14일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실에서 열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일본군의 위안소 설치와 한국 여성들에 대한 강제 동원 사실을 알린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동시에 2012년 아시아연대회의에 의해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로 채택된 날도 14일이다. 2018년부터는 한국 정부 역시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이날 기념 학술대회에서 정진성 유엔(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위원은 ”해방 후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지속되고 권위주의 정부가 들어선 상태에서 가부장제 문화의 굴레 속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오랜 기간 은폐돼 왔다”며 “일본 정부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자 김 할머니가 공개 증언을 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할머니의 증언은 다른 피해자들의 증언이 나오는 계기가 됐고, 일본 정부에 대한 법적 소송과 수요시위 등 사회 운동의 동력이 됐다”고 덧붙였다.
양징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전국행동 공동대표는 “김 할머니 증언 당시 일본 정부는 위안부는 ‘민간 업자가 데리고 다닌 것’이라며 정부와 군의 관여조차 인정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때 김 할머니의 등장은 일본 사회를 뒤흔든 사건”이었다고 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엘리자베스 W. 손 교수는 “김 할머니는 전 세계 여러 세대 여성들이 본인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며 “예를 들어 네덜란드계 호주인 얀 루프 오헨 할머니가 김 할머니의 공개 증언을 텔레비전으로 시청한 뒤, 본인도 1992년 공개 석상에서 증언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당시의 군 성폭력 생존자들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공개 증언에 힘입어 UN에서 증언하기로 결정했던 일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우리는 앞으로도 생존자 할머니들의 경험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작업과 젠더 기반 폭력의 생존자들의 존엄성을 가르치는 작업 역시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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