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소설집 ‘야운하시곡’ 표제작 쓴 하지은씨
교육청서 일하며 작가 활동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
/김연정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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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발간된 장르 소설집 ‘야운하시곡’(황금가지)의 표제작은 냉혹한 무림의 일인자가 어린 아들을 하늘로 떠나보낸 뒤 겪는 회환을 그린다. 주인공이 압도적인 강자로 성장해가며 적들을 쓰러뜨리는 무협지의 흔한 이야기 공식과는 다르게, 무협 장르의 외피를 입고서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추적하며 보편적인 인간의 ‘부정(父情)’을 다뤘다. 이를 쓴 하지은(37) 작가는 낮엔 9급 공무원으로, 밤엔 소설가로 산다. 지난 2018년부터 인천교육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직장 동료들은 아무도 제가 작가라는 걸 모른다.” 야운하시곡은 그가 처음 쓴 무협 소설로, 주로 판타지 장르 작가로 활동한다. “현실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쓰고 싶은 걸 보면, 현실을 벗어나고 싶나 보다. 자유롭게 상상하는 대로 배경과 캐릭터를 특색있게 꾸미는 게 좋다.”
첫 단행본 출간은 서울시립대 컴퓨터공학부 재학 시절 쓴 판타지 장편 ‘얼음나무 숲’. 대학 4학년 때 쓴 작품이 졸업 직후인 2008년도 세상에 나왔다. 당시로선 독특하게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설정과 유려한 문체에 독자들의 높은 반응을 얻었다. “새로운 판타지 문학”이란 호평을 받으며 회원수 1000명이 넘는 팬클럽도 생겼다. 책은 증쇄를 거듭하며 괜찮은 수익도 안겼고, 출판사는 전업 작가를 권유했다. 글 쓰는 일이 취미였던 그에게 전업 작가란 타이틀은 꿈같이 다가왔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전업 작가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정도 수익이라면.”
스물다섯부터 서른살까지 작품에만 매진했다. 1~2년마다 한 권씩 작품을 발표했지만, 수입은 자꾸만 불안정해졌다. 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 학원 자습 감독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핸드백 수출입 회사와 여행사에서 단기 계약직으로 근무했다.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했다. 하루 8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틈틈이 공책에 소설을 썼다. 편의점에 손님이 오면 펜 내려놓고 바코드 찍고, 손님이 가면 다시 펜 잡고 몇줄 더 쓰고.”
/김연정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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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서른셋 나이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해 1년 만에 합격했다. “수습 발령 기간에 ‘작가 생활하다 왔다’고 하면 주변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작가라고 하자 글 쓰는 일이 내게 몰렸으니까. 너 작가야? 그럼 회의록 작성하고 공문도 네가 좀 써. 하하” 평일 오전 9시에 출근해 7시에 집에 온다. 집필을 위해 저녁밥을 10분 만에 해치우고 다시 집을 나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 쓸 시간이 없다. 투잡을 뛰기가 쉽지 않더라. 시간도 시간이지만, 직장에서 소진하는 에너지도 상당하다. 집에 오면 피곤해 쉬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를 채찍질해서 다 잡는 일이 쉽지 않다.”
가방 메고 집 근처 카페로 가 2시간 동안 키보드를 두드린다. “하루에 잘 써질 땐 200자 원고지 20~30매. 한 자도 못쓰고 올 때도 있다. 마이너스인 날도 있다. 써 놨던 원고를 고치다 맘에 안 들어서 삭제할 때.” 주말엔 오후에 2~3시간 쓴다. ‘얼음나무 숲’은 절판된 중고 도서가 정가의 5배에 거래될 정도 오랜 인기를 구가했다. 재출간 요청이 끊이지 않자 출판사는 첫 출간 11년 만인 지난해 다시 책을 펴내 1만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웹툰과 드라마도 제작을 준비 중이다.
차기작 ‘언제나 밤인 세계’를 온라인 소설 플랫폼 사이트 브릿G에 연재하고 있다. 어두침침한 판타지 스릴러. 두 개의 몸이 붙어 있는 샴쌍둥이는 한쪽만 살려야 하는 부모의 선택을 받는다. 그런데 죽었어야 하는 아이가 하반신이 없는 채로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만약 그렇게 살아난 아이가 나중에 커서 부모의 선택을 알게 됐을 때 어떤 감정을 느낄까. 배신감? 복수심? 자기 나름의 존재 의미를 찾고 싶어할까? 삐뚤어진 심리와 세계를 그리고 싶었다.”
그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작가란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판타지를 쓴다고 주위에서 놀리는 말도 듣지만, 창피하지 않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쓴다. 그 글의 모습에 미스터리네, 판타지네, 일반 소설이네, 하는 장르가 결정될 뿐이다. 결국엔 잘 쓰는 작가, 잘 쓰인 작품이 인정받는다.”
[이기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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