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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지구에 격리된 우리, 다르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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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BOOK]

한겨레

나는 어디에 있는가?

코로나 사태와 격리가 지구생활자들에게 주는 교훈

브뤼노 라투르 지음, 김예령 옮김 l 이음 l 2만원

<나는 어디에 있는가?>는 과학사회학에서 생태정치학까지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브뤼노 라투르(74·사진)가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쓴 책이다. 프랑스에서 올해 1월 출간됐는데, 발 빠르게 번역되어 나왔다. 라투르는 이 책에서 코로나19에 따른 고통스러운 ‘격리’의 경험을 자신이 말해온 ‘신기후체제’에 적응하기 위한 교훈 또는 훈련으로 바라보는, 일종의 ‘철학적 콩트’를 구사한다. “바이러스가 강요한 봉쇄는 완곡하게 ‘생태학적 위기’라 불리는 바가 강요하는 격리의 일반화에 차츰 친숙해지기 위한 예행 연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지은이는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 ‘변신’에서 그레고르 잠자가 겪은 벌레-되기, 곧 ‘변신’을 주된 비유로 끌어온다. 변신 뒤의 그레고르가 그랬듯, 우리는 팬데믹과 그것이 강제한 격리를 계기로 도대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묻게 됐다. 격리된 곳은 어딘가의 내부인데, 지은이는 이를 ‘지구’(Terre)라는 고유명사로 명명한다. ‘지구’는 “결코 하나의 전체 속에 규합된 적은 없으되 하나의 공통된 기원에서 나와 사방으로 확장되고, 퍼지고, 섞이고, 중첩되는 과정을 거치며 전면적으로 변형되었고, 계속되는 자신들의 발명에 힘입어 끊임없이 제 최초의 조건들을 수선해 냈기에 마침내 가족 같은 유사성을 지니게 된 전 존재자들을 집결”한 곳이다.

한겨레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지구’에 격리된 ‘지구생활자들’(les terrestres)이 갈 수 있는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지표면 위아래로 2~3킬로미터 남짓한 ‘임계영역’이다. “어느 정도 지속가능한 거주적합성의 조건들을 창조해낼 수 있었던” 영역이 딱 그 정도라서다. 근대성은 ‘아무 데나’, 심지어 임계영역 너머의 우주(Univers)까지도 우리의 영토인 양 생각하게 만들었지만, 실제로 지구생활자들은 딱 이 정도의 영토에서 “얽히고설킨 진창 속에 포개어진 채 ‘어디엔가’ 거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팬데믹과 격리가 일깨워준 핵심적인 진실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구생활자들은 탈출을 위해선 되레 “안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해야 하며, 그 방법은 “같은 장소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아내는 것”이라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마냥 무한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신처럼 굴기를 그만두고, 다른 여러 지구생활자들과 서로 기대어 이곳을 거주할 만한 곳으로 만든 행위역량들에 최대한 협력하라는 주장이다. 또, 단 하나의 최종점으로 길을 내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지 비판하며, 생존의 전 역량을 탐사하기 위해선 “최대한 사방으로 흩어져야 한다”는 조언을 건넨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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