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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언론 징벌적 손배제, 속도전 대신 숙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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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익은 개정안 ‘갈등 불씨’ 산적

시민단체, 8월 입법 강행에 우려

언론현업단체 “헌법소원 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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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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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최종안이 나왔나요?” “법안 내용이 뭔가요?”

기자가 ‘언론 대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새로 도입하는 법안에 대한 언론시민단체 및 전문가의 평가·의견을 물을 때마다 들었던 질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찬성해 국회 논의를 꾸준히 지켜본 단체 활동가나 전문가들조차, 수시로 바뀌는 법안 내용을 따라잡지 못하고 ‘어떤 시점’의 ‘어떤 법안’의 ‘어떤 조항’의 내용인지부터 물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포함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 걸 두고, 언론시민단체들이 “8월 안 입법을 위한 무리한 속도전은 중단하고, 충분한 숙의를 거쳐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민주당은 “이미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언론 대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지난해 6월 최초로 발의안이 나온 지 한달 만에 문체위에 상정돼 1년여 동안 계류했다. 그 사이 법안소위 논의와 전문가 의견 청취 등이 진행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정부·여당이 언론 대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내세운 법안 종류만 해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정청래·김용민 의원 등 대표발의), 상법 개정안(법무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윤영찬 의원 대표발의), 민법·형법 개정안(이원욱 의원 대표발의) 등으로 다양했다. “언론에 대한 규제는 언론 관계법에서 하는 게 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언론중재법 개정 방향으로 의견이 모였지만, 언론중재법 개정 관련 발의안만 해도 16개에 달했다. 27일 국회 문체위 소위를 통과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러한 16개 법안을 병합해 만든 또 다른 ‘새로운’ 안이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협력실장은 “이달 초 민주당 단일안이 처음 나온 뒤 박정 의원실 관계자와 30분간 논의한 게 전부다. 27일 새로 마련한 안을 두고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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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 제6차 회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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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시민사회단체 및 전문가 다수는 “언론보도에 대한 실질적 피해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고 있다. 특히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 손해배상 액수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김정민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박사과정과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최근 발표한 논문 ‘언론보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관련 시계열 데이터 분석’을 보면, 2005년 언론중재법 제정 이후 2019년까지 손해배상액수는 꾸준히 하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법원의 (손해배상액) 인용액 분포는 1000만~2000만원, 조정사건은 그보다 낮은 500만원 이하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을 미루어보면 현재 언론관련 손해배상사건 인용액의 실질적인 수준은 20년 전보다 오히려 낮아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현재 민주당 종합안은 ‘손배액 현실화’라는 목표에 맞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법안은 “허위·조작 보도”라는 개념을 새로 더하고 “특칙”을 통해 “손해액의 5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손해액을 배상할 수 있도록 했다. 손해를 산정하기 어려울 때는 “보도에 이르게 된 경위” 및 “보도로 인한 피해 정도”와 함께 “언론사 등의 전년도 매출액에 1만분의 1에서 1천분의 1을 곱한 금액 등을 고려해” 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는 조항도 추가했다. 언론학자 일부는 “허위·조작 보도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고, ‘5배’나 매출액의 얼마라는 기준의 근거도 구체적·객관적이지 않아서 위헌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들은 또 언론중재위원회의 손해배상 산정액 실행 지침이나 법원의 위자료 산정 기준 전반을 현실화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봤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전례가 없는 입법이라서 입법 의도와 다르게 작용할 여지가 있다. 법을 바꾸더라도 재판부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면서 “사법부와도 미리 같이 논의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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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출처: 논문 ‘언론보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관련 시계열 데이터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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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나 고위 공직자가 언론의 비판 보도 자체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제기하는 ‘전략적 봉쇄 소송’에 대한 우려 또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법안은 ‘언론 재갈 물리기’라는 비판을 의식해, 공직자나 후보자, 대기업 관계자들에 대해 “악의를 가지고 허위·조작보도를 한 경우에 한하여 적용한다”는 조항을 덧붙였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찬성하는 단체들조차도 ‘독소 조항’으로 분류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언론의 고의와 중과실로 ‘추정’되거나, (문제가 있는 보도라고) 청구만 들어간 상태에서도 언론 보도를 열람 차단하거나 인용을 막는 건, 시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원 언론노조 정책협력실장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더라도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에 대해선 예외를 두자고 주장해왔는데, 이번 안을 보면 예외를 두기는커녕 공인들이 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준 것처럼 보인다”면서 “지금 법안대로면 기자가 기업의 반인권적 노동 환경을 직접 살피려고 위장 취업한 경우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언론현업단체는 헌법소원까지 언급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신문협회, 한국여기자협회, 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5개 단체는 28일 공동 성명을 내어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을 강행할 경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내는 것을 비롯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적극 저지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실질적 피해구제 강화’라는 법안 취지에 걸맞은 조항 일부는 언론시민단체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정정보도 요구 통로 및 시기 확대(서면, 전자우편, 누리집 모두 가능) △추후보도 청구권 범위 확대(행정처분 포함) △언론중재위원 자격 확대(독자·시청자 명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윤여진 상임이사는 “지금까지 언론중재위원으로 전직 언론인이나 언론학자 등이 들어갔는데, 이번 법안에는 독자와 시청자를 추가해서 다행”이라며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언론보도 피해를 고려할 수 있는 사람들을 중재위원에 더 적극적으로 포함하는 문구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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