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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로마제국은 기후변화와 전염병으로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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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학자가 쓴 신간 '로마의 운명'

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라는 유명한 저작에서 한 나라가 팽창하면 자연스럽게 쇠락한다고 했다. 그는 거대한 조직체가 그 무게를 영구적으로 지탱하기는 쉽지 않다고 봤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과 아프리카 북부, 중동 일부를 영토로 삼은 거대한 로마제국이 멸망한 까닭을 하나만 콕 집어 말하기는 쉽지 않을 듯싶다. 그래도 흔히 언급되는 이유가 무절제와 퇴폐다. 사람들이 탐욕을 추구하다 몰락했다는 것이다.

미국 출신 역사학자 카일 하퍼는 신간 '로마의 운명'(더봄 펴냄)에서 색다른 견해를 내놓는다. 그는 로마제국 멸망의 이면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기후변화와 바이러스, 전염병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로마제국 전성기에 황위에 오른 오현제(五賢帝) 중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재위 161∼180) 집권 시기를 기점으로 몇 차례 전환점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첫 번째 변곡점은 160년대였다. 당대에 활동한 연설가 아에리우스 아리스티데스는 "타는 듯한 고통과 흐르는 진물이 뒤섞인 상태"라는 기록을 남겼다. 제국에 전염병이 퍼져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저자는 "밀집된 도시 거주지, 지형의 끊임없는 변화, 제국 내부와 외부가 강력하게 연결된 교역망, 그 모든 것이 특정한 미생물이 번식하기 좋은 생태계 형성에 기여했다"고 이야기한다.

역병은 3세기 중엽에도 찾아왔다. 기근도 이어졌다. 일조량이 감소하고, 추위가 닥쳤다. 키프리아누스 주교는 당시 전염병 증상으로 피로, 혈변, 발열, 구토, 청력 상실, 실명 등을 거론했다. 신체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른다고 했다.

저자는 "로마제국은 특유의 풍토병이 아닌 외부에서 침입한 역병에 다시 한번 희생됐다"며 "전염병으로 인해 제국이 비축해 둔 힘이 고갈됐고, 이후 세상은 무정부 상태가 됐다"고 설명한다.

물론 로마제국은 이때 찾아온 위기로 망하지 않았다. 하지만 380년대에는 곡식 수확량이 감소했고, 5세기에는 부의 순환이 단절됐다.

전염병과 소빙하기에 따른 기후변화는 476년 서로마제국이 붕괴한 뒤 남은 비잔틴제국도 괴롭혔다. 저자는 6∼7세기에 시신의 대량 매장 사례가 급격하게 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두 차례 발생한 팬데믹은 제국을 서서히 무너뜨렸다.

다양한 기록으로 로마제국 역사를 돌아본 저자가 전하는 바는 명확하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려는 헛된 욕망을 품었으나, 결국은 자연에 의해 망했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전파력 강한 감염병과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상기후 현상으로 고통을 겪는 요즘, 한 번쯤 곱씹어 볼 만한 메시지다.

부희령 옮김. 544쪽. 2만5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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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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