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 2년째 살고 있는 직장인 김모(27)씨도 비슷한 불만을 갖고 있다. 지난달엔 20대 남성이 친구들로부터 감금·폭행을 당해 숨진 ‘마포 오피스텔 감금 살인’ ‘마포 나체 살인’과 같은 뉴스가 인터넷을 도배하더니, 최근엔 40대 남성이 지인으로부터 살해당한 ‘마포 오피스텔 잔혹 살인’ 뉴스가 또 터진 것이다. 김씨는 “어디 가서 ‘마포구 오피스텔’에 산다고 하면 ‘거기 살인 사건 난 데 아냐? 안전하냐?’고 묻는 사람이 꼭 있다”며 “솔직히 불안한 마음도 있고, 월세 계약이 끝나면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갈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최근 ‘일산 학폭’을 비롯해 ‘마포 오피스텔 살인’ ‘노원 세 모녀 살인’ 등 지역명(名)이 붙은 사건이 쏟아지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단지 사건 하나가 발생했을 뿐인데 마치 우범지대 같은 낙인이 찍히고, 집값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등 부작용이 많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인 경찰에서도 편의상 ‘마포구 오피스텔 살인 사건’처럼 지역명으로 사건 이름을 붙이고, 이것이 언론과 인터넷 등을 통해 확산한다.
심지어 ‘경기도 화성’은 1986~1991년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범죄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불만이 나온다. 지금은 삼성전자의 첨단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는 등 지역이 많이 발전했지만 여전히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10년 전부터 경기도 화성시에 살고 있다는 김모(53)씨는 “처음 이사 올 때보다는 덜하지만, 지금도 화성 산다고 하면 ‘그때 그 살인 사건 일어난 곳이냐’는 질문에 난감할 때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지역명, 피해자’ 대신 ‘피의자, 범죄 혐의’로 사건 이름을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직장인 안모(26)씨는 “‘노원구 세 모녀 살인' 사건이 아니라, 범인인 김태현과 사이버 스토킹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더 알려졌어야 한다”고 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본인이 사는 지역의 정보가 불필요하게 공개되고 입에 오르내리면 불편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사생활과 정보 보호에 대한 시민들의 민감도가 올라간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영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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