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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5 (목)

이슈 [연재] 뉴스1 '통신One'

[통신One] 스위스 그뤼에르 목동은 요들송을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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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건과 벤의 겨울나기 ②

뉴스1

해발 1320미터에 위치한 모건과 벤의 샬레. © 신정숙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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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뤼에르=뉴스1) 신정숙 통신원 = 올 여름엔 염소를 돌보지 않는 모건은 그동안 배웠던 보타닉 가이드를 하고 있다. 이 일은 산에서 서식하는 각종 식물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알고 사람들과 함께 산행을 하면서 알려주는 것인데, 한국의 약초꾼과 비슷하고 식용이 가능한 식물이나 허브를 수집해서 차나 시럽을 만들어 파는 이들도 있다. 알파지에서 한 걸음 나아가 그동안 산에서 살면서 보며 냄새 맡고, 맛봤던 식물들을 공부해서 조금씩 삶의 변화를 주고 있다.

이들은 6개월을 산에서 보내고 마을로 내려가면 겨울을 보낼 집이 작년까진 없었다. 그동안 노란 스위스 우체국 버스를 개조해서 만든 캠핑카 생활을 하면서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 정도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집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작년부턴 겨울을 보낼 집이 필요해 한 농가의 작은 아파트를 월세로 얻었다.

그렇다고 긴 겨울을 놀면서 보내지만은 않는다. 손재주가 좋은 벤은 사람들이 서로 데려가 일하고 싶어할 정도로 인기 있는 목수다. 샬레에는 그의 솜씨가 뭍어나는 생활 용품과 작품들을 곳곳에서 볼 수가 있고, 샬레 안쪽엔 웬만한 공구와 비품들이 구비된 작은 아뜰리에도 있다. 모건 역시 일을 찾아 하기도 하고, 평소 관심이 있었던 분야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 농한기의 농부들도 쉬지 않는 것처럼 이들의 생활도 별반 다른 게 없다. 6개월 집중했던 삶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사람 사는 세상 속에서 겨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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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몰고 산을 내려가는 목동 벤. © 신정숙 통신원


알파지를 하면서 이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 언제였을까? 두 사람 모두 처음 알파지를 시작했을 때였다고 대답했다. 모건은 "그땐 처음이라 아무 것도 몰라 허둥대기도 하고, 긴장도 되고 두려웠지만 소와 염소를 비롯해 고양이들과 개들, 닭들도 있어 너무 바빴다. 동물들을 알아가면서 그들과 지내는 하루 하루가 즐거웠고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할 일이 많았다. 힘들다는 생각보단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고 회상했다.

벤 역시 "부모님과 알파지 생활을 해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내가 직접 해보니까 쉽진 않았다. 방목된 소들이 어디 있는지, 저녁에 소들이 헛간으로 돌아올 땐 소들의 귀에 달려 있는 번호표를 보고 점검해야 하고, 사고가 나지 않도록 주위도 살펴야 하고. 할 일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처음 하는 거라 신이 났다. 산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고 했다.

반면에 가장 슬픈 순간은 함께 지내던 동물들이 죽을 때라고 한다. 얼마 전에도 송아지 한 마리가 풀을 뜯어 먹다 뭔가 잘못 먹었는지 며칠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을 비롯해 세상 만물의 죽음은 슬픈 것이라고. 모건은 소들이 태어나 자유롭게 산에서 사는 이 순간이 그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일 거라고 했다. 산에서 내려가면 소들은 대략 생후 1년이 되어 임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때부터 죽을 때까지 인공수정을 통해 9개월 임신과 3개월 수유, 또 임신과 수유를 번갈아 가며 하다가 대체로 5년이 지나면 생을 마감하게 된다고 한다.

이젠 하늘만 봐도, 구름의 모양과 바람의 방향만 봐도 날씨를 가늠할 수 있다는 벤. 그는 고등학교까지 그가 태어난 스페인 카나리섬에서 살다가 취업을 하면서 스위스에 살게 되었다. 언어가 달라도 목수 일은 크게 언어 능력을 요구하지 않아 어렵지 않게 일을 하게 되었고, 타고 난 손재주로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샬레 마당에 태양전지를 설치해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고, 샬레 밖 한 쪽에 피자를 구워먹을 수 있는 화덕까지 만들어 놓았다.

어쩌다 뭐든지 척척 만들어내는 '금손'이 됐는지 궁금해 물어보니, "도구나 기계들은 작동하는 원리가 있다. 인내심을 가지고 그 원리를 찾아 들여다 보면 어떻게 작동하는 지 알게 되고, 고장이 나면 수리도 직접할 수 있다. 왠만한 건 직접 고칠 수 있고 자동차 모터도 직접 바꿔봤다. 하하!"

순박한 그의 웃음과 소를 닮은 그의 눈이 더 맑아 보였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내년에도 할 건지 물어보니, 두 사람은 입을 모아 "그건 모르겠다. 또 할 수도 있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내일 일은 우리도 잘 모르듯이 오늘, 지금을 살아가는 거다. 내게 주어진 일을 잘 끝내는 게 목표고, 소들이 무사히 잘 있는지 확인하는 게 오늘 내가 할 일이다"고 한다.

산에서 8년을 살면 이렇게 삶을 통달하게 되는 걸까? 이제 서른이 된 두 젊은이에게 듣는 대답은 마치 오랜 수행을 한 선사나 사두의 한 마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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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한 다발 들고 함박웃음 짓는 모건. © 신정숙 통신원


정규 교육을 받고 평생 직장을 갖는 건 이미 옛날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몇 개의 직업을 가지고 다양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평생 한 직업으로만 살기 힘들어진 세상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도 벅차고, 남들처럼 사는 것도 힘들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모건과 벤은 자신들이 선택한 길, 자신들이 내린 결정을 받아들여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모든 게 경험이라고 했다. 하지만 맞고 틀리다는 기준은 또 뭘까? 다만 다를 뿐이지. 무수한 실패와 경험을 통해 계속 배워가고 있고, 자연이 주는, 살아있는 생명들이 주는 고귀한 경험을 오늘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경쾌한 요들은 없지만 자연의 소리와 소울음 소리, 그리고 달랑달랑 울리는 방울 소리는 쉴새없이 들려왔다.

(관련 기사 링크: https://www.news1.kr/articles/?4363801)
sagadawa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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