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희의 나우 인 재팬]
BTS 베스트앨범 日서 100만장 돌파
'최악 한일 관계'속 3차 한류 폭발적
"BTS는 한류 틀 넘어선 월드스타"
문화 매개로 교류..한일관계에 희망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일본 베스트 앨범 'BTS, 더 베스트(THE BEST)'. [빅히트뮤직 제공=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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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중학교 3학년 여학생은 “BTS 앨범은 이미 종류별로 샀고, 오늘은 ‘엔하이픈(ENHYPEN)’ 사진을 주는 이벤트가 있어 왔다”고 했다.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데, (한국 가수를 좋아하는 게) 불편하진 않냐”고 물으니, 놀랐다는 듯 되물었다. “저는 잘 모르는데, 한·일 관계가 안 좋은가요?”
BTS가 지난달 16일 일본에서만 출시한 베스트앨범 ‘BTS, 더 베스트(THE BEST)’가 9일 일본레코드협회로부터 ‘밀리언 인증’을 받았다. 누적 출하량 100만장을 돌파했다는 증표다. 올해 일본에서 밀리언 인증을 받은 가수는 BTS밖에 없다. 이 앨범은 일본 오리콘 ‘주간 앨범 랭킹’에서도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일본 내 BTS 팬덤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10일 일본 도쿄 시부야 타워레코드 'K-POP' 층에 진열돼있는 BTS 베스트앨범. 이영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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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하는 두 세계, 왜?
일본의 주류 정서가 된 것처럼 보이는 ‘혐한(嫌韓)’과 민간 교류를 완전히 단절시킨 코로나19에도 BTS로 대표되는 일본의 ‘3차 한류’는 식을 줄 모른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K팝과 드라마, 한국 화장품·음식·인테리어 등의 생활 문화가 깊게 퍼져나가고 있다.
최근 한 마케팅회사 조사에서 일본 고등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로 11%의 지지를 받은 BTS가 뽑혔다. 일본의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생) 사이에선 친구들과 한국 음식을 먹으며 한국 가수의 콘서트 영상을 보는 ‘도칸곳코(渡韓ごっこ·한국여행놀이)’가 유행이라고 한다.
10일 일본 도쿄의 K팝 전문 댄스학원인 '댄스 스튜디오 시에로'에서 트와이스의 안무를 배우고 있는 수강생들. 이영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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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이런 3차 한류 현상은 일본 주류 미디어에선 쉽게 발견할 수 없다. 마치 기성세대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거대한 세계가 다른 차원에서 공존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는 3차 한류가 과거의 1·2차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1차, ‘소녀시대’ ‘카라’가 불러일으킨 2차 한류가 TV 방송 등 ‘올드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고 확산됐다면, 3차 한류의 무대는 철저히 소셜미디어(SNS)와 유튜브 등 인터넷 기반의 플랫폼이다.
BTS는 이 새로운 플랫폼을 기반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일본 도카이(東海)대 교양학부 김경주 교수는 “일본 젊은 세대는 인터넷을 통해 K팝과 한국 문화를 수용하고 나누고 즐긴다. TV나 신문으로 정보를 거의 접하지 않기 때문에 양국 관계 뉴스에도 사실상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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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는 한류 아닌 월드 스타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양국 관계가 냉각되면서 일본 TV에서는 한국 콘텐트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현재도 이런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1차 한류의 주요 팬층이던 중년 여성들 중엔 ‘변심’을 고백하는 사례도 많았다.
2018년 11월 BTS의 도쿄돔 공연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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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3일 그룹 BTS의 일본 도쿄돔 첫 공연을 보기 위해 인파가 몰렸다.[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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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의 경우도 2018년 이른바 ‘반일 티셔츠 논란’으로 일본 방송 출연이 취소되는 등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일본 내 BTS 팬덤은 빠르게 확장하는 모양새다. 특히 BTS가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그래미 무대에 서는 등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일본 내에서 BTS를 정치적인 문제와 연결해 비판하는 목소리는 거의 사라졌다.
권용석 히토쓰바시(一橋)대 교수는 “BTS라는 존재는 이미 한류의 영역을 넘어선 ‘월드 스타’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일본이 동경하는 미국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도 양국 관계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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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양국 관계 가능성"
BTS 현상은 한·일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올까. 전문가들은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관계가 펼쳐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일본의 Z세대는 한국을 일본과 ‘동등한 레벨’의 국가로, 더 나아가 ‘동경하는 나라’로 인식하기 시작한 첫 번째 세대다. 김경주 교수는 “‘문화’를 입구로 한국을 이해하기 시작한 이들이 정치·역사적 사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면서도 “새로운 양국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싹트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케이팝은 일본서 이미 ‘하나의 장르’가 됐다.”
도쿄 메구로(目黑)구에 있는 '댄스 스튜디오 시에로(CIELO)'는 지난 2011년 문을 연 일본 최초의 K팝 전문 댄스학원이다. 코로나19 유행 가운데도 이곳에선 일주일에 60회 이상의 댄스 수업이 성황리에 진행 중이다. 10년간 일본 내 한류를 지켜봐 온 마치다 싱고(町田真吾·41) 대표를 만났다.
일본 도쿄에서 K-POP 전문 댄스학원인 '댄스 스튜디오 시에로'를 운영하는 마치다 싱고 대표. 이영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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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요즘 인기있는 수업은?
A : BTS, 트와이스, 니쥬다. 특히 BTS 안무를 배우는 수업은 오픈과 동시에 마감된다.
Q : 지난 10년간 한·일 관계가 계속 좋지않았는데.
A : 영향은 크지 않았다. 2012년 이후 TV에서 K팝이 사라졌지만, 이를 즐기는 층은 계속 존재했다. 한국 기획사들이 일본인 멤버를 선발하는 등 국제 관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것도 효과를 본 것 같다.
Q : 코로나19의 영향은 없었나
A : 사람들이 집에 머물면서, 유튜브 등을 통해 K팝을 즐기는 사람이 더 늘어났다. 작년부터 평일 낮수업도 하고 있는데, 미취학·초등학생 자녀와 어머니가 같이 배우러 오는 경우도 많다.
Q : 최근 수강생들의 특징은?
A : 예전엔 한국의 모든 것에 관심있는 ‘한국 마니아’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라이트한’ 팬들이 급증했다. 한국은 잘 모르지만 K팝이 좋다, BTS가 좋다는 식이다. 일본에서 K팝은 이미 국가라는 틀을 넘어선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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