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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업무 중 다쳐도 산재 제외, 내게 ‘자동차 사고 괴담’은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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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친구들 릴레이 기고 ② ‘방송작가도 노동자다’

자동차 함께 탔어도, 피디·카메라감독·아나운서만 산재 처리


한겨레

방송작가유니온 조합원들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 테이블에 방송작가의 현실을 고발하고 노동자성 인정을 요구하는 큐시트를 펼쳐놓고 단어를 고르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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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들의 비정상적인 노동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사자들의 끈질긴 문제 제기로 2020년 방송작가 2명을 해고한 <문화방송>(MBC)의 결정이 부당해고라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도 지난 3월에 나왔다. 지금 지상파 3사는 시사교양·보도 분야 작가들의 근로자성 문제로 특별 근로감독을 받고 있다. 그러나 방송 3사는 근로감독 대상 명단과 연락처를 뒤늦게 제출하거나 일부만 제출해 근로감독을 지연시키고 있다.

수십 년을 일하고도 하루아침에 잘리고 퇴직금 한 푼 없이 쫓겨나는 방송작가, 또 방송사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전태일재단, 노회찬재단,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방송작가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방송 3사가 이제라도 근로감독에 적극 협조하기 바라며, 두 번째 릴레이 기고를 싣는다.


삶에 얻어맞을 때 필요한 것


이은혜 ㅣ 방송작가



자동차 한 대에 네 명의 방송국 사람이 타고 있었다. 운전석에는 카메라 감독이 앉았고, 조수석에는 작가가 앉았다. 뒷좌석에는 피디(PD)와 아나운서가 자리했다. 이 차량이 다른 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들은 촬영을 나가다 사고를 당했다. 여기서 문제. 네 사람 가운데 산업재해 처리를 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계약서 한 장 없이 일한 프리랜서 작가다. 작가의 자리에 브이제이(VJ)나 리포터가 들어갔어도 마찬가지다. 방송사가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모든 직군은 업무와 관련된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도 자비로 치료해야 한다.

이 ‘자동차 사고 괴담’은 도시전설이 아니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 겪었던 일화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방송 일을 하는 동안 절대로 다치거나 아프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일하다 다치면 산재는커녕 부품처럼 갈아 끼워질 수 있으니 늘 조심해야 했다. 나는 방송국의 내 책상에 각종 약병과 간단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간식거리를 넉넉히 쟁여두기 시작했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니 방송사는 나와 관련된 모든 의무에서 자유로웠다. 휴가도 줄 필요가 없었고 정년도 보장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늘 내가 나를 챙겼다. 공복이 길어질 것 같으면 칼로리바를 먹었고, 위가 콕콕 쑤시는 것 같으면 양배추 성분이 들어있는 알약을 삼켰다. 아프지 않고 오래 일하기 위해 늘 조심했다.

하지만 조심은 조심이고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의 유명한 어록도 있지 않나.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이라고. 나 역시 여든 살 생일을 라디오 부스 안에서 맞고 싶다는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삶에 ‘처맞기’ 전까지는.

방송가에서 프리랜서로 살다 보면 ‘내가 나를 지킬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그 순간은 하나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 한 지역방송의 리포터에게는 갑작스러운 해고로, 10년 경력의 용역 브이제이(VJ)에게는 폭행과 폭언으로, 의욕 넘치는 신입 조연출에게는 최저시급만도 못한 급여로, 어느 운 나쁜 취재작가에게는 산재 없는 교통사고로 온다. 그 순간은 잘 벼려진 칼에 자상을 입는 일과도 비슷하다. 베이는 순간엔 자각하지 못하다 소매가 흥건하게 젖은 뒤에야 흐르는 피를 느낀다. 칼을 든 사람은 이미 지나갔고 남겨진 것은 나와 내 상처뿐이다.

내가 나를 지킬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오랫동안 방송가 프리랜서들에게는 주어진 선택지가 하나뿐이었다. 침묵. 이 선택지를 따르지 않으면 추방됐다. 생사여탈권을 쥔 사람이 늘 지척에 있었고, 프리랜선 인력을 자르는 건 머그컵을 바꾸는 일만큼이나 간단하고 신속했다. 신입 프리랜서들은 업무보다 무력감을 빨리 배웠다. 자신을 변호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송사라는 세상 안에서도 사람들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싸워볼 수 있는 사람들, 싸움이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 정규직 피디나 계약직 아나운서처럼 노동자로 분류된 이들에게는 노동조합이라는 둥지가 있었다. 노조는 이들에게 최소한의 저지선이 되어주었다. 극단적인 예로 계약직 방송사 직원이 상사에게 성폭력을 당하면 적어도 갈 곳이 존재했다.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할 창구가 있었다. 소속도 노조도 없는 프리랜서는? 침묵하며 고통을 견디거나 떠나는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문득 이삼십 년을 방송사 안에서 프리랜서로 버텨온 작가 선배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119가 올 때까지 일을 했고 응급실에서 자막을 뽑았다는 선배, 출산 몇 주 만에 부랴부랴 복귀했다는 선배. 그 시절 선배들은 얼마나 많은 일을 묵묵히 견뎌야 했을까. 그 크고 작은 상처들은 이제 다 굳은살이 되었을까.

세상이 변했고 사람이 변했다. 방송사만 그대로다. 방송계 프리랜서들은 이제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노동인권 감수성을 싹 틔우는데 방송국만 고여 있다. 아래에서는 벌써 개혁이 시작됐는데 위는 꿈도 꾸지 말라며 빗장을 걸어 닫는다. 그 빗장, 한번 열어보자고 패기 있는 작가와 스태프, 연기자들이 알아서 모였다. 방송작가들도, 방송연기자들도, 뮤지션도, 공연예술인도 스스로 노동조합을 구성했다. 이들은 말한다. 1980년대 수준으로 정체된 원고료도, 일하다 사고가 나면 자비 치료를 해야 하는 것도 이제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고.

주변에 노조라는 단어만 들어도 멈칫하는 이들이 있다. 특히 방송에서 오래 일한 프리랜서들이 더 그렇다. 학습된 무기력과 반복된 부당 대우가 몸을 사리게 만든다. 노조에 들기만 해도 ‘미운털’ 박혀 잘리는 것 아닌가 두려워하는 이들을 본다. 나라고 그 두려움을 왜 모를까. ‘미운털’이라는 게 얼마나 주관적이고 자의적일 수 있는지, 결정권자의 기분에 따라 직이 사라지는 경험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도 겪어서 알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노조의 존재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송가 프리랜서에게 ‘내가 나를 지킬 수 없는 순간’은 어떻게든 오고야 마니까. 사실 노조가 필요한 순간은 순풍이 아니라 격랑 속에 있을 때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말처럼 ‘누군가 내 삶으로 나를 때리고 있는 것’ 같을 때를 위해 노조가 있다. 우리는 그저 선택하면 된다. 함께 바람에 맞설 것인지, 오롯이 혼자 감당할 것인지.

나는 시기가 맞지 않아 전직이 되고 나서야 방송작가유니온에 가입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노조원이 아닌 소액 후원회원에 더 가까운 셈이다. 전직 방송작가가 노조에 가입해 얻는 게 뭐냐고? 수많은 ‘최초’를 목격하는 기쁨을 누린다. 2021년 3월20일에는 한 유명 방송사의 해고에 방송작가노조와 손잡고 맞서던 두 뉴스 작가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에서 방송작가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된 최초의 사례다. 2020년에는 다른 거대 방송사 보도국 작가의 퇴직금 체불 진정에 최초로 지급 결정이 내려지기도 했다. 이런 최초를 자꾸 본다. 현직에게는 용기가 될 테지만 내게는 이런 일들이 위로다. 과거의 나를 향한 일종의 위무다. 이런 최초가 쌓이다 보면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근거 있는 믿음을 품는다. 방송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영화계에서도, 출판과 공연, 음악과 게임, 웹툰과 타투 업계에서도 노조가 구성됐다. 오늘도 ‘최초’를 만들기 위해 많은 이들이 분주하다.

여기 노조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말한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 2015년 9월7일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미국 노동절을 맞아 광역 보스턴 노동협의회에 참석해 한 연설 일부다. 노조의 필요성은 미국 대통령도 안다. 직업의 개수만큼 노조의 개수가 존재하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일하는 모두가 존엄하게 살 수 있도록.

한겨레

지상파A사 뉴스팀 사무실 작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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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꿈이 착취당하지 않는 사회를 향해

어떤 노동자도 노동권 바깥으로 내몰리지 않는 세상을 위해


강민진 l 청년정의당 대표


한겨레

여기, 하나의 직업이 있다. 밤낮 없이 일을 해도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하루아침에 예고도 없이 일터에서 쫓겨나도 악 소리 한 번 못 내고 그대로 짐을 챙겨 나가야 한다. 근로계약서를 쓰기도 어렵고,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육아휴직도 없다. 심지어 실컷 일 시켜놓고도 결과물의 송출이 취소됐다는 이유로 임금을 안 주는 일도 일어난다. ‘세상에 이런 직업이 있다고?’ 싶을 만큼 고달프고 서러운 노동환경이다. 이 직업의 이름은 바로 방송작가다.

언론은 사회 문제와 부조리를 고발한다.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하고, 산업안전에 관한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도가 연이어 나올 때도 있다.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노동 문제를 다루는 시간도 많아졌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작가는 과연 얼마나 노동자로서 존중받고 있을까. 여성 청년의 비율이 다수를 차지하는 방송작가라는 직군이, 현대 사회가 만들어둔 최소한의 노동법적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은 뼈아프다.

종종 방송 출연 섭외를 받는다. 섭외 전화가 걸려오면 휴대전화 너머에선 대부분 젊은 여성인 방송작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들은 방송 콘셉트와 주제를 알려주고, 대본을 보내준다. 방송 출연을 위해 방송사를 찾았을 때 맞아주고 안내해주는 사람도 방송작가다. 이십대 여성인 나와 비슷한 연배의 여성들이 방송작가로, 특히 막내작가로 일을 하고 있다. 방송은 방송작가의 손끝에서 시작하고 방송작가의 자잘한 노동을 통해 완성되지만, 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노동권 바깥의 노동자’다.

방송사가 하나의 성(城)이라면, 방송작가는 성 안의 시민권을 얻지 못한 신분으로 내몰렸다. 방송국 내에서 일하고 방송 제작을 위해 없어선 안 될 존재이지만 ‘프리랜서’라는 이름을 달아 언제든 성 바깥으로 내쫓을 수 있는 존재로 취급받는다.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 등 ‘노동권 바깥의 노동’의 확산은 최근 들어 더욱 심각해진 문제이나, 사실 방송사에서는 오래된 관행이었다.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노동자라고 부르지 않고, 노동자로 대우하지 않으면서 착취하는 행태의 원조격이 다름 아닌 방송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를 거치면서 방송작가는 원고 구성과 작성뿐만 아니라 취재, 출연자 섭외, 취재안 및 편집안 구성, 출연료 지급을 비롯한 각종 행정 업무까지 도맡게 되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처우와 보상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은 암울하다. 부당해고, 불공정 계약, 원고료 체불, 성희롱, 열악한 수준의 모성권 보호로 요약되는 방송작가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과연 지금이 과연 2021년이 맞는지 되묻게 한다.

방송작가의 노동에서 여성노동의 현실을 보고, 청년노동 실태의 단면을 목격한다. 방송작가의 94.6%가 여성이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70% 이상은 ‘원할 때 임신을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잦은 밤샘 등 높은 노동강도와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 조치가 전무한 노동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다. 방송작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0~30 연령대’ 응답자가 77%를 차지했다. 조사결과를 보면, 방송작가 중 정규직은 단 0.2%에 불과하고, 93.4%는 프리랜서 신분이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의문을 품는 젊은 방송작가들은 “노력해서 스타 작가가 되도록 하렴” 따위의 말들을 듣는다. 꿈을 좇아 열정을 불태운 청년들에게 돌아온 대가는 불안정한 고용과 참혹한 노동환경이다.

방송사는 방송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청년의 선망을 악용해왔다. 부와 명예의 성취를 이룬 극소수의 스타 방송작가를 롤 모델로 내세워 지금 힘들어도 꾹 참고 버티면 언젠가 너도 저런 스타 방송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노동 착취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해온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같이 일하는 피디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급여를 현금이 아닌 상품권으로 받아도 그만둘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꿈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정치의 책임도 크다.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 정치가 노동자의 존엄과 안전을 우선순위에 두었다면 방송작가의 눈물은 진작에 닦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특히 공영방송의 경우 노동에 관한 공적 책무를 마땅히 이행하도록 정치권이 책임을 다해 감시하고 시정을 요구하였어야 마땅하다.

이제 기회가 왔다. 최근 중앙노동위원회가 <문화방송>(MBC) 부당해고 방송작가 2명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방송작가 노동자들의 오랜 싸움 끝에 지상파 3사를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이 진행 중이다. 근로감독 결과는 방송작가의 노동자성 인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데, 이를 아는 방송사들은 기어코 근로감독의 제대로 된 진행을 방해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치가 방송작가들의 손을 잡아야 한다. 더 이상 청년의 꿈이 착취당하지 않는 사회, 어떤 노동자도 노동권 바깥으로 내몰리지 않는 세상을 함께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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