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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국학진흥원, 국학자료 목록집 ‘파평윤씨 야성군파 우암종택’ 발간 보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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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 울진 파평윤씨 야성군파 우암종택 기탁 자료 목록집 발간보고회 열어

1100개 넘는 문중서 58만점 기탁받은 뒤 발간사업 통해 국학자료 역사문화적 가치 발굴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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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매화면 삼조어비각 앞에서 열린 2021년도 국학자료목록집(73) 발간보고회 행사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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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지난 17일 울진군 매화면 몽천샘길 삼조어비각 앞에서 ‘2021년도 학자료목록집(73) 발간보고회’를 가졌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보고회는 울진의 대표적 명문가인 파평윤씨 야성군파 우암종택의 기탁 자료를 정리해 목록집으로 발간한 것을 기념하는 자리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방역 지침에 따라 전찬걸 울진군수, 김성준 울진문화원장, 장선용 울진군의회의장. 국학진흥원 권진호 국학기반본부장, 최연숙 국학자료팀장을 비롯해 우암종택· 지역 인사와 유림 일부만 참석한 가운데 기탁 자료의 가치에 대한 발표, 발간 도록 증정식 순으로 조촐하게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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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림집(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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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면 파평윤씨 야성군파 우암종택은 2005년부터 2021년까지 4차례에 걸쳐 고서와 고문서, 목판 등 1555점의 국학자료를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했다. 우암종택은 24세손 우암(憂庵) 윤시형(尹時衡, 1602~1664), 25세손 삼족당(三足堂) 윤여룡(尹如龍, 1633~1710), 27세손 황림(篁林) 윤사진(尹思進, 1713~1792) 등 3대가 조선시대 효종, 숙종, 정조에게 각각 비답유지(批答有旨)를 받을 만큼 학식과 덕망을 갖추어 지역사회를 넘어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은 문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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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자료 목록집 73 ’파평윤씨 야성군파 우암종택 蒙泉(몽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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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영덕을 본거지로 하는 야성군파는 윤신달(尹莘達)의 14세손 윤혁(尹赫)을 중시조로 삼고 있다. 윤혁은 고려 말 충숙왕의 부마가 되어 영덕을 식읍지로 하사받게 되었고, 충숙왕의 딸 정경부인 왕씨와 같이 영덕에 내려 와서 그 고을의 중심지인 궁촌(지금의 달산면 용평동)에 거주지를 만들게 됐다. 우암종택에서 기탁한 자료는 문집 간행 관련 문서인 망기(望記), 방명록 및 책판, 호적과 삼조어비각 건립을 축하하는 간찰 및 중건 기록, 윤시형이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몽천정사와 서원 승호(陞號)를 축하하는 문서, 윤사진 천거와 서원 배향 관련 문서인 소지(所志), 답통문(答通文), 고유문, 관문(關文) 등 17세기 이후 울진군의 지역 상황과 당시 유림들의 교유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들이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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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손 황림 윤사진이 저술한 정관치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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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윤시형과 윤여룡, 윤사진이 임금에게서 받은 비답유지를 기념하여 건립한 삼조어비각은 우암종택뿐만 아니라 지역의 자랑이다. 24세손 윤시형은 초야의 선비로서 백성들의 고통을 조목조목 알리는 ‘만언소(萬言疏)’를 효종에게 올려 1656년 비답유지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만언소를 관보에 실어 팔도에 배포하게 하는 등 효종에게 인정을 받았다. 25세손 윤여룡도 숙종이 1678년에 정치에 대한 폐단의 정언(正言)을 구하자, 정치부패와 민생의 고통을 일일이 열거하고 그 해결책을 적은 ’국가편의17조(國家便宜十七條)’를 올려 숙종에게 기쁘고 고맙다는 내용의 비답유지를 받았으며, 27세손 황림 윤사진은 ‘정관치설井觀癡說’이라는 성리학 저술로 철리(哲理)가 고금에 뛰어나다는 비지(批旨)를 1791년에 받게 된다. 한 문중에서 3대를 이어 임금의 비답을 받는 일은 매우 흔치 않고 영광스러운 일이기에 1794년에 ‘삼조어비각’을 세워 오늘날까지도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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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어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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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로 내려오면 일제 강점기에 울진 유생의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창유계(暢幽契)를 조직하여 독립을 열망하다 26개월 동안 모진 고문을 당하고 26세라는 젊은 나이로 옥사한 36세손 윤종수(尹宗洙, 1917~1943)가 있다. ‘만언소’로 임금의 실책을 꾸짖은 우암의 기백이 후손에게도 그대로 이어진 결과라 하겠으며, 문중을 넘어서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선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25주년을 맞은 한국국학진흥원은 2001년부터 1100개가 넘는 문중에서 58만 점 가까운 자료를 기탁받아 다량 기탁 문중의 자료를 정리하여 목록집으로 발간하는 사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이번 목록집은 73번째로 한국국학진흥원은 기탁한 모든 문중의 자료를 정리하여 각각의 자료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입체적으로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정종섭 원장은 “국학자료의 현대적 재해석을 통해 역사문화적 가치를 찾아내고 적극 알리는 국학진흥원의 주어진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박태해 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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