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7 (토)

‘#쿠팡탈퇴’ 이면엔…이익은 누리고 책임 피하는 총수에 대한 분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쿠팡 김범석 국내법인 의장·등기이사 사임

주요 대기업 그룹 총수와 닮은꼴 행보

과로사·판매자 정산 지급 등 논란 함께 불거져

#쿠팡탈퇴 #쿠팡불매 움직임 잇따라

쿠팡 “숨진 소방령 유가족 평생 걱정없이 지원”


한겨레

지난 17일 화재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가 20일 오전 폭격을 맞은 듯 뼈대를 드러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로켓 배송으로 고속 성장하던 쿠팡이 소비자 불매 운동을 맞닥뜨렸다. 잇따른 배송기사 과로사에 누적된 부정적 평판에 창업주의 책임 회피성 등기임원 사임 결정과 물류센터 대규모 화재 사태가 겹치면서 소비자들의 불신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평가다. 쿠팡 쪽은 화재 유가족에 대한 보상안을 내놓으며 불매 운동 진화에 나섰다. 전문가들은 쿠팡의 가장 강력한 의사결정자인 김범석씨가 국내 법인 등기임원직 사임은 권한은 행사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규제회피 전략이라고 입을 모은다.

쿠팡 불매 운동 확산


“기업이 달라질 수 없다면 소비자가 달라져 문제 기업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 맞다.” 화재 발생 사흘째인 지난 1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시작된 쿠팡 불매·탈퇴 움직임이 이틀 연속 빠르게 확산 중이다. #쿠팡탈퇴 #쿠팡불매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쿠팡 회원탈퇴 화면을 갈무리한 ‘인증샷’을 올리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피시(PC)와 모바일 등 플랫폼별 회원 탈퇴 방법을 담은 글도 인터넷에 속속 등장 중이다. 전날에는 트위터에서 ‘쿠팡 탈퇴’가 대한민국 실시간 트렌드 항목에 1위에 올랐고, 네이버 등 검색 포털에선 ‘쿠팡회원’이란 검색어에 ‘탈퇴’가 자동 완성 검색어로 등장했다. ‘검색어 자동 완성 기능’은 유사 키워드의 입력이 늘면 인공지능(AI)이 검색어를 자동으로 추천하는 서비스다. 그만큼 쿠팡회원 탈퇴를 키워드로 한 검색이 폭증하고 있다는 얘기다.

쿠팡 쪽은 김범석 창업자와 강한승 대표이사 등이 전날 물류공장 화재로 순직한 경기 광주소방서 소속 김동식(52·소방령) 119구조대장의 빈소를 찾는 데 이어 20일엔 “고 김동식 소방령의 유가족분들이 평생 걱정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겠다”라는 설명과 함께 유족 지원 방안과 장학 기금 조성안을 내놓으며 불매·탈퇴 운동 확산 진화에 고심 중이다.

한겨레

지난 3월11일(현지시각)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고 김범석 창업자(왼쪽에서 세번째)가 개장을 알리는 오프닝 벨을 울렸다. 쿠팡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반발 기름 부은 김범석의 행보


불매·탈퇴 움직임이 퍼진 데는 김범석 창업주의 최근 행보가 영향을 미쳤다. 화재 발생 당일인 지난 17일 쿠팡은 김범석씨가 글로벌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등기임원에서 물러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김씨는 쿠팡의 모회사로 미국에 소재한 쿠팡Inc의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만 맡고 국내 쿠팡 경영진에선 발을 뺐다.

지난 11일 이런 결정이 이뤄졌다고 쿠팡 쪽은 설명하지만, 김범석씨의 이런 행보는 국내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거나 앞으로 불거질 법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특히 김씨는 지난해에도 쿠팡 배송기사의 잇단 과로사 문제를 다루기 위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요청받았지만 불출석하며 그해 말 국내 법인 대표이사직을 내려놓은 전력이 있다.

일부에선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중대재해처벌법을 염두에 둔 행보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해당 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기업체의 최고경영진에 책임을 묻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년에도 배송기사의 과로사 사건 등이 재발할 경우 형사 처벌받을 수 있는 여지를 김범석씨가 사전 차단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쿠팡에선 지난해에만 9명의 배송기사가 과로사가 의심되는 이유로 사망했다. 실제 쿠팡은 올해 초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기업 경영의 주요 리스크 중 하나로 꼽은 바 있다.

한겨레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공격적 규제 회피”


전문가들은 김범석씨의 행보가 낯이 익다고 본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는 “김범석씨의 국내법인 직책 사임은 권한 행사와 책임을 분리하는 공격적 규제회피로 판단된다”며 “국내 재벌 기업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일탈 행위”라고 짚었다.

실제 국내에선 경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경영상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등기임원을 맡지 않는 총수 일가가 적지 않다. 물론 현행 상법은 미등기임원이더라도 ‘업무집행 지시자’(사실상의 이사)로 보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조항이 있지만, 현실에선 적극 활용돼 처벌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 5월 기업분석 전문기관인 한국시엑스오(CXO)가 기업집단 64곳을 포함한 국내 200대 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총수급 지배주주 200명 중 상장사의 등기임원이 아닌 경우는 54명에 이른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김범석씨가 미국 국적자인 터라 공정거래법상 형사제재가 어렵다는 이유 등을 들어 쿠팡의 총수(동일인)로 지정하지 않은 바 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33살 한겨레 프로젝트▶‘주식 후원’으로 한겨레의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