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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사다리’ 잇는 복지가 이재명표 공정…‘싸움닭’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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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약점·기회·위협 4가지 틀로 분석

가치와 비전 ‘정책 구현’ 능력 돋보여

가벼움도 전략이라는데 ‘불안정’ 인상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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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 <한겨레> 자료 사진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2022년 3월9일까지 딱 265일 남았다. 앞으로 9개월은 대권을 꿈꾸는 이들에겐 길고도 짧은, 피 마르는 시간일 터이다. 대선주자들 저마다 거쳐온 삶의 굴곡이 다르고, 정치적 경로가 다양하며 여건과 구도, 여론의 흐름이 차이가 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단점을 모로 세우면 장점이 되고 위기를 돌파하면 기회가 찾아오는 법. <한겨레>가 여론·정치·심리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여야 대선주자들의 강점(Strength), 약점(Weakness), 기회요소(Opportunity), 위협요인(Threat)을 분석했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첫 순서다.

‘정치인 이재명’의 강점과 약점은 명확하다. 이 지사도 스스로 말한다. “나는 겁이 없다. 살아가면서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날 때부터 강심장이어서가 아니라 인생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그 이전에도 나는 옳지 않은 일을 맞닥뜨릴 때마다 저항했다. 그 상대가 누구이든 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이재명은 합니다>, 2017년)

이 지사의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그의 유년시절을 들여다봐야 한다. 5남2녀 중 다섯째인 이 지사는 14살에 조그마한 가내수공업 목걸이 공장 노동자로 사회 첫발을 뗐다.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려 남의 이름을 빌려 일한 ‘이름 없는 소년공’이기도 했다. 그러다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프레스 기계 사고로 왼쪽 팔을 다쳐 장애인 6급 판정을 받았다. 지금도 그는 왼쪽 팔을 곧게 펼 수 없다.

이 지사는 16살이던 1980년 7월7일 일기에 “집안에 재미라곤 하나도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돈돈! 예시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내겐 상관없다.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죽음을 택하기로 한 상태니까. 나도 한번 열심히 살아서 아버지에게 보이고 싶고, 또한 교복 한번 입어보지 못한 내 신세가 처량해서 즐거운 학창 시절 한번 갖고 싶은 것”이라고 썼다. 두번의 자살시도 끝에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그는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중앙대 법학과 입학은 그에게 “공돌이가 대학생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 강점(Strength)

가난이 서러웠던 소년공이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실력을 쌓아 유력 대선주자로 커온 과정은 정치인 이재명을 ‘공정’의 문제에 천착하도록 만들었다. 도지사 취임 이후 새로 만든 경기도 도정 슬로건은 ‘새로운 경기, 공정한 세상의 시작입니다’이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불공정이 더 화두가 됐다. 가령 입시제도가 수시·정시 등으로 다변화되자 ‘백’ 있는 기득권층이 달라진 제도를 마음껏 활용하면서 ‘룰’이 무너졌다. 불공정에 대한 대중의 감각도 예민해졌다”며 “이 지사는 정치적으로나 개인적 삶에 있어서나 가진 것 없이 시작해 실력으로 이 자리까지 오다 보니 그가 말하는 ‘공정’이라는 단어에 더 힘이 실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 지사의 공정은 현재 보수진영이 외치는 ‘공정’과는 방향이 다르다. 가령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말하는 공정이란 실력을 갖추면 그에 합당한 보상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능력에 대한 믿음, 곧 능력주의다. 하지만 이 지사에게 공정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최대한 같은 출발선에 서서 경쟁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다. 이 지사의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 등 ‘기본 시리즈 공약’도 이런 가치의 연장선이다.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는 “비전이 분명한 것”을 이 지사의 강점으로 꼽았다. 성 선임기자는 “이 지사의 소년공 스토리를 알게 되면 그를 싫어하던 사람들도 마음을 좀 열게 된다. 신화는 감성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지사는 계층 상승의 꿈을 이룬 사람이기 때문에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다시 복원시킬 것이라는 신뢰가 있다. 이런 신뢰감이 지지도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의 장점은 이런 가치와 비전을 정책으로 구현하는 능력이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기본소득 등 정책을 기반으로 자신의 정치와 지지층을 확립해가는 보기 드문 모델”이라고 말했다.

추진력과 실행력도 빼놓을 수 없는 강점이다. 이 지사는 코로나19 사태가 확산일로에 있던 지난해 비밀리에 신천지 과천본부를 급습해 신도 명단을 확보했다. ‘바가지요금 없는 휴양지’를 만들겠다며 경기도 하천계곡의 불법시설을 과감하게 철거하는 모습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이 지사 쪽 한 의원은 “정치인들은 표를 생각하면서 이해 당사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지사는 국민들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하면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돌파해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지사의 전투력은 동전의 양면처럼 작용한다. ‘싸움닭’ ‘사이다’ ‘불독’은 대선주자 이재명에게 썩 달가운 별명은 아니다. 상대방에게 ‘거칠다’ ‘과격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이 지사와 가까운 한 의원은 “많은 20~30대 유권자들은 시원하다, 후련하다고 좋아하지만, 반대로 ‘저런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을 하느냐’는 말도 많이 듣는다. ‘사이다 발언’ 덕분에 여기까지 왔는데 그것 때문에 안정감이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걸 바꾸자니 이 지사의 고정 지지표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어서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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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범철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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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점(Weakness)

이 지사는 한때 “가벼움이 나에게는 의미있는 가치이며 전략” “다소 경박하더라도 친근하며 우스운 말과 행동은 경계를 허물어뜨린다”고 했지만, 나라를 이끌어야 하는 대선주자에게 ‘더 이상의 가벼움’은 거부감을 줄 수 있다. 이 지사가 지역화폐가 경제 활성화 효과가 없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쓴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대해 “얼빠진 국책연구기관” 같은 원색적인 비난을 페이스북에 쏟아낸 것도 한 사례다. 당시 측근 그룹에서는 페이스북 글이 계속 논란이 되자 ‘글을 올리기 전에 먼저 우리와 상의하고 올리는 게 좋겠다’는 조언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발목이 잡힌 대표적 사건이 바로 형수 욕설 논란이다. 형수와 집안일로 의견이 충돌해 욕설과 막말을 퍼부은 사건은 언제든지 다시 불거져 네거티브 공세에 활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 지사도 저서에서 “이른바 ‘형수 쌍욕 사건’으로 인해 나는 꽤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온라인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나의 욕설 파일은 앞으로 정치인 이재명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낙인으로 남게 되었다. 나는 그 낙인을 애써 가리거나 지울 생각이 없다”고 했다. 일부에선 이미 선거에서 검증을 받은 사안이라고 하지만, 가볍게 볼 수만은 없다. 윤태곤 실장은 “이회창 전 총리의 아들 병역 문제는 1997년 대선 때 검증을 받았기 때문에 끝이라고 했지만, 2002년 대선에서 다시 문제가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민적 이미지와 대비돼 더 부각된 측면도 있었다. 선거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알 수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막말의 이유야 무엇이든, 이 지사의 생생한 육성 파일이 만천하에 공개된다면 대통령다운 품격을 기대하는 유권자들이 실망하고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한국 사회의 주류와 거리가 먼 ‘마이너리티’라는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나 상고 졸업을 끝으로 ‘학번’을 갖지 못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최고 통수권자의 지위에 올랐음에도 항상 기득권층의 질시 대상이었다. 그에겐 ‘노사모’라는 강력한 팬덤층을 중심으로 한 대중적 지지 말곤 기댈 곳이 없었다. 사회심리학자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은 “노 전 대통령이 좌절한 이유는 항시적으로 뒷받침하는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후반에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필요하다고 한 것도 이 때문 아니겠냐”며 “이 지사 역시 탄탄하게 조직된 국민의 지지 없이는 기득권층의 반발을 뚫고 나가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까지 첩첩이 쌓인 장애물을 넘어가려면 대범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필요하다. 성 선임기자는 “경선 연기론에 대해 불필요하게 방어적이다. 경선 일정을 연기하면 현재 1위의 지위를 놓칠까봐 반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개헌 의제에 대해서도 방어적인데 현재 구도가 흔들리지 않을까 조바심을 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여유있게 대응해야 품이 큰 정치인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개헌 이슈와 관련해 “필요한 건 인정하지만 지금은 방역과 민생에 좀 더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며 사실상 반대했고, 흥행을 위해 경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가짜 약장수 시대는 지났다’며 강경한 모습이다. 여권 내에서는 개헌과 경선 연기론을 축으로 ‘반이재명 전선’이 짜이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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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협요인(Threat)

그렇다면 외부 위협요인은 무엇일까. 가장 큰 위기는 ‘정권 심판론’이 ‘정권 재창출론’보다 높다는 것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4일 발표한 6월 1주차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를 보면, 차기 대선 때 ‘야당 후보가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0%로, ‘여당 후보 당선’(36%)을 크게 앞섰다. 한귀영 연구위원은 “민주당이 2016년 총선 이래 연승을 거둔 뒤 견제 여론이 높아졌다. 조국 사태, 추미애-윤석열 대립을 거치며 민주당 지지층이 분열한 것도 위기”라고 말했다. 단기적 악재로는 ‘이준석 돌풍’이 꼽힌다. 이 지사 쪽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당대표를 바꾸고 참신한 개혁 이미지를 가져가버리면 우리 당은 낡은 정당, 기득권 정당으로 낙인찍힌다. 민주당 후보인 이 지사에겐 당연히 위기”라고 했다.

■ 기회요소(Opportunity) 반면 ‘반민주당 정서’는 역으로 이 지사에게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이 지사와 가까운 한 의원은 “여권의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반민주당 정서에서 타격을 덜 받을 수 있다”며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사람들도 우리를 대안으로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2017년 대선 경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경쟁했고, 2018년 지방선거 때는 친문재인계 핵심인 전해철 의원과 경선을 치렀다. 문재인 대통령과 충돌한 적은 없지만 친문들에겐 이질적인 존재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회고록 출간 때도 이낙연·정세균 두 경쟁자와 달리, 이 지사는 침묵하며 친문계와 거리를 뒀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의 경쟁 구도는 장기적으론 이 지사에게 유리하다는 전망도 있다. 이 지사 쪽의 또 다른 의원은 “윤 전 총장은 검증되지 않은 후보다. 외교·국방·복지·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전문성이 많이 떨어진다”며 “아무리 조언 그룹이 있다고 해도 본인이 준비가 되지 않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 계획대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순조롭게 이뤄져 11월 집단면역이 이뤄지면 여권 지지율이 올라가게 되고, 그러면 이 지사도 자연스럽게 당의 상승세에 올라타지 않겠냐는 낙관론도 있다.

이 지사는 2017년 1월 자신이 소년공으로 일하던 오리엔트 시계공장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아무도 억울한 사람 없는 공정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두번째 대선 출마 선언도 임박했다. 그는 앞으로 안팎의 도전에 어떤 승부수를 내놓을까. 그의 강점과 약점이 직조해내는 정치적 역량에 달려 있다.

♣️H6s서영지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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