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2 (수)

‘이건희 미술관’이 뭐길래...지자체 유치경쟁 점입가경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해운대구 “청사 제공”…대구시 “건축비 전액 지원”

민간에서도 유치공조 나서, 일부 떨떠름한 분위기


한겨레

국립 이건희미술관 대구 유치 시민추진단 등은 지난 7일 대구시 북구 대구삼성창조캠퍼스(옛 제일모직 터)에서 범시민 성금 모금 운동 발대식을 열었다. 대구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국 곳곳 지방자치단체들이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미술관 건축비는 물론 구청 청사까지 제공하겠다는 제안까지 등장했는데,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부산 해운대구는 15일 “해운대에 이건희 미술관이 건립된다면 국외관광객 유치 등 부산 관광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국토 균형발전에 폭발적인 시너지 효과를 거둘 것이다. 이건희 미술관이 해운대구에 온다면 현 청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 400여m,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해운대구 청사는 지하 1층, 지상 6층, 연면적(전체 건축물 바닥면적의 합계) 1만721㎡ 규모로 땅값은 공시지가 기준 1724억원(3.3㎡당 6600만원)에 이른다.

해운대구는 2024년까지 재송동에 새 청사를 마련해 옮겨갈 예정이다. 홍순헌 해운대구청장은 “관광특구인 해운대는 부산시립미술관 등 한강 이남 최대의 갤러리 밀집지이자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국제컨벤션 행사가 일년내내 열리는 문화예술도시이기도 하다. 가덕도신공항이 건립되면 부산 서부산권역은 동북아 국제물류 중심으로, 이건희 미술관이 더해진 해운대는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것이다”고 말했다.

‘삼성의 뿌리’임을 자부하는 대구시는 지난 1일 이건희 미술관 건축비 2500억원을 무상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경북도청이 경북 안동으로 옮겨간 뒤 대구시가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터(문화체육관광부 소유) 3만2천㎡에 이건희 미술관(1만㎡)과 보존센터(2천㎡), 조각공원·야외공연장·음악분수·잔디광장 등 복합문화공간(2만㎡)을 갖춘 ‘국립 이건희 헤리티지센터’를 짓겠다는 구상이다. 중앙정부가 터를 내놓으면 건축비는 대구시가 내놓겠다는 제안인 셈이다. 대구시는 삼성상회터~이건희 생가~삼성창조캠퍼스~이건희 미술관을 잇는 ‘이건희 로드’(4.7㎞)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건희 미술관 건립이 문화 균형발전의 첫걸음이 될 것이며, 그 최적지는 준비된 도시 대구”라고 강조했다.

민간 부문에서도 대구와이엠시에이(YMCA)를 중심으로 모금운동에 나서는 등 유치 열기가 뜨겁다. 지난 7일 '이건희 미술관 대구 유치 범시민 성금모금운동 발대식'이 열렸는데, 이 자리에는 대구상공회의소,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대구시연합회(대구예총), 대구광역시체육회,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등 관련단체 대표들이 대거 참석했다.

세종시에선 “지방분권 차원에서 국회 이전과 함께 이건희 미술관이 세종시에 세워져야 한다”며 지난달 41개 시민단체가 참여해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한 세종범시민추진위원회’가 꾸려져 활동을 시작했다. 범추위는 지난 12일 세종시 호수공원에서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한 시민문화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춘희 세종시장은 “다른 곳보다 세종시에 이건희 미술관을 만들면 부지 확보도 쉽고, 결정만 나면 바로 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대한민국 중앙에 있는 세종시 위치 때문에 전국에서 미술품을 관람하기 좋은 점들이 다른 지역과 다르다”고 밝혔다.

한겨레

부산 해운대구가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해 무상 제공 의사를 밝힌 청사. 해운대구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전시도 국립현대미술관 분원을 유치하기 위한 용역을 진행한 옛 충남도청사를 이건희 미술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놓고 물밑 작업 중이다. 충남 서산시에서는 시의회를 중심으로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챌린지가 이뤄지고 있다. 이연희 서산시의회 의장은 9일 페이스북에 “이건희 미술관이 서산에 건립된다면 서해안 유류 유출 사고로 많은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상징이 될 것”이라는 글을 올렸다.

전남 여수시에선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아름다운 여수의 해안 경관을 좋아해 자주 방문했을 뿐 아니라 여수시 소라면 일대 섬과 터를 매입하기도 했다”며 지난달 10일 예술·시민단체 96곳이 ‘이건희 미술관 여수유치위원회’를 꾸렸다. 유치열기가 고조되며 7일엔 초등학교 7곳의 학생 430여명이 “여수에 이건희 미술관을 세워달라”는 손편지를 써 대통령과 국무총리,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에 보내기도 했다.

수도권에서는 인천시가 미추홀구 용현·학익 1블록 도시개발사업 예정 터(4만2천㎡)에 조성할 예정인 복합문화시설 ‘인천뮤지엄파크’에 이건희 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내용의 제안서를 지난달 21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했다. 뮤지엄파크에는 인천시립박물관·인천시립미술관·공원 등이 들어설 예정인데, 이건희 미술관을 더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관내에 국립중앙박물관을 두고 있는 서울 용산구도 지난달 24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이건희 미술관 용산 건립을 정식으로 요청했다. 용산구는 이건희 전 회장의 유족들이 용산구 관내인 한남동에 살고, 이 전 회장이 삼성의 ‘영빈관’으로 사용했던 ‘승지원’ 역시 한남동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술계 인사 677명도 ‘이건희 미술품 특별관 용산 건립 민간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용산구 유치에 힘을 보태고 나섰다.

지난달 초 부산 북항에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부산시는 3일 문화체육관광부에 “이건희 미술관을 공개모집 형식으로 선정해 달라”고 건의했다. 수도권이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견제하고 나선 것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우리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문화의 힘을 전 국토로 확장해 나라 전체가 품격있는 문화국가로 격상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건희 미술관은 수도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 들어서야 한다. 이번 이건희 미술관의 입지 결정 과정은 중앙정부가 지방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확인할 수 있는 진정한 리트머스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고 말했다.

한겨레

대구시가 제안한 이건희 헤리티지센터. 대구시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자체들의 치열한 이건희 미술관 유치경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지역사회의 정책과 예산 분석’을 모토로 지난해 출범한 시민단체인 부산경남미래정책은 “이병철·이건희 컬렉션은 주요 작품별로 주목받을 사안이자 재벌 삼성가의 오랜 역사다.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겠다는 부산시의 대처는 걸음마 수준이다”고 비판하면서 부산시에 더 적극적인 유치 활동을 주문했다. 또 “이건희 미술관은 단순 문화시설이 아니므로 지역균형발전 수단이 아니다. 자치단체마다 유물과 작품 관리를 위한 제반 시설부터 대혁신한 뒤 순회전 방식으로 전시하는 게 순리”라고 지적했다.

반면 초등학생 편지까지 등장한 전남 여수시에서는 여수시교육장과 초등학교 교장 등이 “정치색을 배제할 수 없는 특정 현안에 초등학생들을 동원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일부 주민이 교육부에 여수시교육장 등을 징계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구에서도 우리복지시민연합,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노총 대구본부, 대구민중과함께,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등은 "차라리 시비 2500억원을 보건·돌봄·기후위기 대응에 예산을 투입하라"는 비판 성명을 냈다. 김광수 김규현 기자, 전국종합 kskim@hani.co.kr

▶벗 덕분에 쓴 기사입니다. 후원회원 ‘벗’ 되기
▶33살 한겨레 프로젝트▶‘주식 후원’으로 한겨레의 벗이 되어주세요!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