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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의사도, 병원도, 약도 없다…“미얀마 쿠데타로 의료체계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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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의사회 미얀마 현장책임자 인터뷰

이탈리아 출신 프란체스카 퀸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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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미얀마 양곤에서 군부 쿠데타에 반대하는 의료진들이 저항을 뜻하는 세 손가락 경례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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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공공의료시설이 마비됐고, 의약품 공급도 원활하지 않다. 코로나19 사태는 현황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빈틈을 메우던 국제 의료지원 단체도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2018년부터 국경없는의사회(MSF) 미얀마 현장책임자로 일해온 프란체스카 퀸토 박사가 전하는 미얀마 의료 상황은 온통 잿빛이었다. 그는 지난 8일 온라인 화상통화를 이용한 <한겨레> 인터뷰에서 미얀마 의료체계가 곧 붕괴될 위험에 놓였다고 했다. 미얀마 군부가 앗아간 것은 민주주의만이 아니었고, 시민들의 건강권도 군부의 총칼 앞에 고사될 위기였다.

오래된 공공병원 중심 의료시스템

의료진 불복종에 문 닫고 운영 축소

통관 업무 마비로 의약품 반입 안돼

군부, 의료진 공격 179건…13명 숨져

코로나 검사역량 10분의 1로 줄고

확진자 수 모르고 백신접종도 중단

HIV감염자·결핵보균자 관리 안돼

운영 어려운 NGO 철수 움직임도

싼 공공병원 문 닫고…민간병원은 비싸서 못 가


“굉장히 어렵다. 지금 상황이 계속되면 미얀마 의료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될 수 있다.” 퀸토 박사는 “정확한 수를 알기 어렵지만, 의료진이 대거 시민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면서 주요 공공병원이 문을 닫거나 운영을 축소했다”고 했다.

환자들은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해 민간의료시설을 찾아야 하는데, 너무 비싸서 치료받기 쉽지 않다. 쿠데타로 미얀마 경제가 넉달 넘게 마비되면서 서민들 살림은 더 홀쭉해졌다.

공공병원 중심의 의료시스템은 오랫동안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해온 미얀마 사회의 유산이다. 시나 구 등에서 운영하는 공공병원이 의료의 중심으로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고, 민간병원은 수가 적고 비싸 중산층 이상이 이용한다.

의약품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퀸토 박사는 “통관 업무가 마비되면서 의약품의 국내 반입 자체가 어렵고, 도로 통제 등으로 내부 물자 수송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은 이전에 조달해 놓은 약품으로 버티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앞으로 큰 어려움이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시위대를 돌보는 의료진을 향한 군부의 공격도 계속되고 있다. 퀸토 박사는 “미얀마에서 의료진에 대한 공격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아직 우리 직원이 직접 공격받은 사례는 없지만, 우리 직원들이 활동하는 데도 큰 부담이 된다. 심리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의료진뿐만 아니라 구급차나 의료시설도 공격 대상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자료를 보면, 지난 2월 쿠데타 이후 미얀마에서 발생한 의료진에 대한 공격은 179건에 이르고 13명이 사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세계에서 발생한 의료진 공격의 절반에 이르는 수치라고 퀸토 박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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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미얀마 타케타 진료소에서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간호사가 환자들을 대상으로 다제내성 결핵 관련 교육을 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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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현황 파악조차 안 돼


의료 공백의 장기화와 대형화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퀸토 박사는 “쿠데타 이후 코로나19 검사 역량이 이전의 10분의 1 이하로 줄었다. 미얀마에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얼마나 유행하는지도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코로나 검사는 쿠데타 직전 하루 1만7천건 이상이었지만 지난달 말 하루 1200회로 떨어졌다. 적잖은 국가들이 백신 접종 등으로 코로나 사태에 대한 통제 단계에 들어섰지만, 미얀마는 확진자 수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도 미흡하다. 퀸토 박사는 “올해 초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대부분 중단됐다. 정치적 이유 등으로 백신을 거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며 “현재 150만명(약 3%) 정도가 1차 접종을 했고, 2차 접종을 한 사람은 34만명 정도 되는데, 미얀마 인구 5500만명에 비하면 매우 적은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인들 사이에서는 백신 접종자가 대부분 군부 관계자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고 한다.

국경없는의사회 미얀마지부가 오랫동안 신경써온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자와 결핵 보균자 등에 대한 치료와 관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퀸토 박사는 “쿠데타 이후 기존 공공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감염자 약 2천여명이 국경없는의사회 진료소로 넘어왔다”며 “의료체계 마비로 감염자들이 위험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도 전염 가능성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퀸토 박사는 “활동 폭이 줄면서 HIV 치료와 관련해 우리가 오랜 노력으로 이룬 성과들이 금세 물거품이 될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미얀마는 전세계 HIV 감염자의 90%를 차지하는 35개국 중 하나로, 동남아에서 타이 다음으로 감염자(24만명)가 많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이곳에 항레트로바이러스 치료제를 처음 들여오는 등 지난 20여년 동안 HIV 치료에 힘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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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국경없는의사회 이동진료팀이 미얀마 북서부 나가의 라헤 마을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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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 장기화로 관심 사라질까 우려


공공의료 공백을 메우던 국제 인도주의 단체들은 최근 철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직원 인건비를 주기 어렵고, 의약품 조달이 어려워지는 등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퀸토 박사는 “우리는 그나마 상황이 나아 아직 운영하고 있지만, 현지 비정부기구(NGO)들의 상황도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군부의 탄압도 심해지고 있다. 최근 미얀마 군부는 국경없는의사회를 콕 집어, 미얀마 최남부 타닌타리주 다웨이에서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라고 통보했다. 이곳에서 국경없는의사회는 2162명의 HIV 감염자를 치료하고 있고, 결핵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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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의사회(MSF) 미얀마의 현장책임자 프란체스카 퀸토 박사.


퀸토 박사는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미얀마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까 봐 우려된다”며 “아시아,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미얀마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관심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도 “한국 시민들이 지난 몇달간 미얀마에 보내준 관심에 감명받았다. 미얀마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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