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색인종·외국인, 왕실 사무직 미고용"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지난달 11일 런던 의회에서 국회 개원 연설을 하고 있다. 런던=AP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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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실이 적어도 1960년대 말까지 ‘제도적’ 인종차별을 유지했다는 정부 문건이 공개됐다. 영국 정부가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했는데도 왕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별을 지속했다. 해리 왕세손의 부인 메건 마클 왕세손빈이 주장한 왕실 내 인종차별 관행이 어느정도 사실이었던 셈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일(현지시간) ‘유색인종 이민자나 외국인이 왕실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긴 국가기록원 문건을 공개했다. 1968년 2월 내무부 공무원 TG 웨일러가 작성한 문건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정 관리 책임자 타이런 경은 당시 “성직 또는 다른 사무직에서 유색인종 이민자, 또는 외국인을 고용하는 것은 관행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왕실의 완고함은 영국 정부가 추진하던 일련의 인종차별 금지법에도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은 “영국 정부는 1970년대 직장 내 인종차별과 성차별에 대응하기 위해 3개의 법안을 도입했으나 왕실은 (법안 적용) 면제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의회에 법안이 넘겨지기 전 국왕이 먼저 해당 내용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관습법적 권리, ‘법안 동의권’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신문은 앞서 2월 “여왕이 즉위한 1952년 이후 동의 여부를 요청한 법안은 1,062건”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영국 왕실이 그간 흑인, 아시아인, 소수민족 등 인종 소수자를 거의 고용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의 일요판인 선데이타임스는 1990년 “검은색 얼굴이 왕실의 고위직 가정과 관료를 빛낸 적이 없다”며 “사무원과 국내 직원들 사이에서도 소수민족 출신 신병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듬해 왕실 연구자인 필립 홀도 저서 ‘로얄 포춘’에서 “왕궁의 최고위직에 비백인 신하는 없다”는 내용을 여왕과 가까운 소식통의 말을 빌려 폭로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인종차별 관행이 언제까지 계속됐는지, 지금은 없어졌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왕실 측은 매체의 확인 요구를 거부하면서도 “소수민족 출신이 1990년대에 고용된 적이 있으며, 이전 관련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고 밝혔다. 또 “왕실과 여왕은 다양성, 포용성 등을 반영한 평등법 조항을 준수한다”고 강조했지만, 여왕이 해당 법령의 적용 대상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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