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 외교문서 공개
1981년 6월9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임하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와 악수하고 있다(왼쪽 사진). 1980년 5월18일 미 국무부가 주한 미국대사관에 보낸 전문에 당시 김경원 주미대사가 미국 정부에 신군부의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에 대한 공개 성명 발표를 보류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외교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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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의 부상 경계하면서도
신군부를 공식 채널로 인정
5·18 관련 미국의 입장 발표
주미 대사가 차단한 내용도
5·18민주화운동을 전후한 정치적 상황과 이를 바라보는 미국 정부의 시각이 담긴 미국 외교문서가 2일 공개됐다. 12·12 쿠데타 이후 미국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정치적 입지가 커질 가능성을 경계하면서도 ‘실세’로 떠오른 신군부와의 채널 구축에 나선 정황, 당시 국방장관이 미국 측에 “군부 실권이 없으니 도와달라”고 말한 내용 등이 포함됐다.
공개된 내용에는 1980년 1월10일 주영복 국방장관이 방한한 레스터 울프 미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소위 위원장과의 간담회 도중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를 따로 불러내 “나는 군부에 대한 실권이 없다. 나를 도와달라”고 토로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미국이 일찌감치 신군부로 세력이 넘어갔음을 파악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군부 내 혼란이 이어지던 1980년 3월13일 미 국무부는 주한 미대사관에 그해 6월로 예정됐던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 개최가 어렵다는 점을 전두환 측에 적절하게 통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미국이 계엄사령관이나 국방부가 아닌 신군부를 사실상 공식 채널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전두환 측이 글라이스틴 대사나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과의 면담을 자신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나 화해의 뜻을 담은 ‘올리브 가지’로 받아들일 가능성을 우려하며, “전두환에게 특별한 명성이나 주목을 부여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신군부가 5월17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한 직후 미국의 정세 평가도 엿볼 수 있다. 미대사관은 “전두환은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지만 반드시 결정적 역할을 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면서 신군부 세력의 집단적 모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반면 최규하 대통령에 대해서는 “무력한(helpless) 대통령”이라고 평가했다.
주미 한국대사가 미국 정부의 입장 발표를 막으려고 시도하는 내용도 공개 문서에 포함됐다. 김경원 주미 대사는 5월18일 리처드 홀브룩 국무부 동·아태차관보를 찾아가 “동맹으로서 미국은 자유롭게 내부 문제에 대해 사적으로 조언할 수 있지만, 공개 비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상당히 불행한 국제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국무부는 “김 대사의 목적은 우리가 언론에 발표하기로 한 공식 성명을 보류 또는 수정하는 데 있었을 것”이라면서도 “김 대사 역시 당시 (진압) 상황에 동요된 것처럼 보였다”고 적었다.
미 국무부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한국 외교부에 제공한 5·18민주화운동 관련 외교문서는 총 14건(53쪽)이다. 1990년대 중반 이미 공개됐지만, 이번에는 당시 가려진 대목까지 모두 공개했다. 5·18 당시 참상을 알리는 데 기여한 문건을 작성했던 미국인들이 장로교 선교사 출신 존 언더우드, 평화봉사단원을 지낸 리처드 크리스텐슨 전 주한 미부대사였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김유진 기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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