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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이틀 쉬었다" 32년 한 작품만 그린 만화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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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예술가의 사회-77] 미우라 겐타로 (만화가, 196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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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대중문화가 수입되던 세기말

국내에 일본 대중문화 콘텐츠가 공식 수입된 건 1998년부터다. 김대중 대통령은 "21세기는 문화산업의 시대이며, 더 이상의 문화 쇄국 정책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빗장을 풀었다.

1998년 국내 극장에 처음으로 일본 영화가 걸렸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하나비'였다. 이듬해에는 '러브레터'가 개봉했다. 이 영화는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대성공했다. 관객 100만명 이상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오겡키데스카'라는 극 중 대사가 전 국민 유행어가 됐다. 이렇게 세기말이라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일본 대중문화는 국내에 정식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한일 대중문화 교류를 시작한 1998년 이전부터 이미 일본 문화는 우리나라 깊숙한 곳까지 침투한 상태였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젊은 세대는 음지에서 '엑스재팬' 음악을 듣고,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봤다.

무엇보다 일본 만화책에 푹 빠졌다. 정부가 수입을 금지해도, 일본 만화책은 국내에 불법적인 방식으로 퍼졌다. 일명 해적판이 판을 쳤다. 해적판이란 원작자 허가 없이 무단으로 복제된 불법 콘텐츠를 말한다.

한국 청소년은 몰래몰래 해적판으로 일본 만화책을 돌려봤다. 드래곤볼, 슬램덩크처럼 대중문화에 큰 획을 그은 만화책 역시 처음엔 해적판으로 유통됐다. 드래곤볼은 '드라곤의 비밀', 슬램덩크는 '스람던크'라는 제목의 해적판으로 국내에 소개됐다.

국내 출판계는 일본 만화에서 돈 냄새를 맡았다. 그래서 일찍이 드래곤볼, 슬램덩크 판권을 사서 국내에 정식 출간했다. 1998년 훨씬 이전부터 일본 만화책만큼은 공식적으로 수입된 것이다. 그런데 드래곤볼, 슬램덩크 못지않게 인기가 있었지만 좀처럼 정식 수입되지 않고 해적판으로만 떠돌던 만화책이 있었다. 해적판 제목은 '불멸의 용병'이었다. 이 작품은 문화 빗장이 풀린 다음 해인 1999년이 돼서야 정식 수입됐다. 그제야 '불멸의 용병'이라는 제목은 '베르세르크'로 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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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크 판타지의 표본 베르세르크

베르세르크가 한참 늦게 정식 수입된 것은 수위 때문이다. 소년 만화 상징인 드래곤볼, 슬램덩크와 다르게 베르세르크는 성인조차 감당하기 버거운 잔혹한 장면이 가득하다. 해적판이 돌아다니던 시기부터 '불멸의 용병'은 불온서적과 비슷한 지위를 누렸다. 온갖 기기괴괴한 소문이 가득한 만화였다. 해적판 버전에서도 잔혹한 장면 상당수는 삭제됐을 정도였다.

1989년 연재를 시작한 베르세르크는 다크 판타지라는 장르를 개척한 만화로 평가받는다. 어둡고, 암울하고, 절망적인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콘텐츠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작품이 베르세르크다. 서양 중세시대가 배경인 덕분에 서구권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전 세계적으로 4000만부 이상이 팔렸다.

주인공 이름은 가츠다. 그는 교수형으로 처형돼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시체로부터 태어났다. 목숨을 잃은 만삭 임산부 자궁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그곳을 지나가던 용병부대가 아이를 발견하고 거둔다. 아이는 용병단 일원으로 성장한다. 크고 작은 전장에서 공을 세운다.

가츠는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그리피스라는 남자다. 그리피스는 '매의 단'이라는 용병단을 이끄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가츠는 기꺼이 그리피스의 꿈에 힘을 보태기로 하고 '매의 단'에 들어간다. 가츠와 그리피스는 치열한 전장을 함께 누비면서 우정을 쌓는다.

하지만 운명은 비극적인 방식으로 흘러간다. 그리피스는 세상을 지배할 힘을 얻기 위해 악마와 계약한다. 이 계약이 성사되려면 그리피스는 가장 소중한 것을 바쳐야 한다. 그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매의 단'을 통째로 제물로 바친다. '매의 단' 단원들이 악령에게 몰살당하는 장면은 일본 만화를 통틀어서도 가장 잔혹한 순간으로 꼽힌다. 지옥 그 자체다.

가츠는 이 학살에서 눈 하나, 팔 하나만 잃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영원히 풀 수 없는 저주를 받았다. 제물로 바쳐진 사람에겐 낙인이 찍힌다. 이 낙인을 가진 사람은 악령의 표적이 된다. 밤만 되면 온갖 기괴한 마물이 스멀스멀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가츠의 목숨을 노린다. 가츠는 굴복하지 않고 싸운다. 검을 휘두르고, 휘두른다. 끝이 없지만 계속 싸운다. 그래서 그는 종종 미쳐버린다. 베르세르크라는 단어 자체가 게르만어로 '광전사'라는 뜻이다. 가츠는 오직 상대를 죽이겠다는 원한만으로 펄떡거리며 자신보다 더 큰 거대한 검을 휘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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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에 대항하는 자

베르세르크는 운명에 관한 작품이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해 묻는다. 가츠는 가혹한 운명 앞에서 무릎 꿇지 않는다. 결코 끝나지 않을 싸움을 계속한다. 그는 그리피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매일 밤 피를 흘리면서 처절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베르세르크는 묵시록적인 공기가 가득한 작품이다. 종말이 닥치기 직전 세상처럼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인간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상상하기도 싫은 어둠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낸다. 고문, 종교박해, 마녀사냥, 악마숭배처럼 판타지 세계가 아니라 실제로 인류가 저질러온 온갖 만행을 묘사한다.

공포와 악에는 헤아리기 어려운 힘이 있다. 많은 사람이 굳이 유쾌하지 않은 공포 영화를 계속 보는 이유도 거기에 눈을 뗄 수 없는 어떤 마력이 있어서다. 베르세르크라는 만화에 깃든 힘은 압도적이다. 베르세르크라는 만화책을 평가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수식어가 '압도적'이라는 형용사다. 블랙홀처럼 무자비하게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이게 가능한 건 압도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작화 때문이다.

베르세르크 작화는 만화책이라는 장르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를 몇 번이나 경신했다. 작화로만 따지면 베르세르크 경쟁자는 베르세르크밖에 없었다. 연재가 진행될수록 그림체는 더 진화했다. 뒤로 갈수록 한 컷 한 컷이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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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인정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집념

베르세르크를 그린 작가 미우라 겐타로의 삶에 대해 알려진 건 많이 없다. 그의 삶은 온통 베르세르크뿐이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베르세르크를 연재한 작가는 눈 감기 직전까지 베르세르크에만 매달렸다. 1989년부터 30년 넘게 연재했지만, 베르세르크 단행본은 40권에 불과하다. 한 권이 나오는 데 1년 이상 걸리기 일쑤였다. 독자들은 내심 신권이 빨리 나오길 바라면서도, 작화 퀄리티를 고려하면 연재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납득해야 했다.

일본은 장인정신을 중시하는 국가다. 그런 일본에서도 겐타로가 만화를 대한 자세는 장인정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일본 만화계는 도제식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구조다. 인기 만화가는 꽤 많은 문하생을 거느리면서 제자를 양성한다. 제자들은 스승 작품에 밑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기여한다.

하지만 겐타로는 인기 작가가 된 이후에도 가급적 조수를 고용하지 않았다. 자신의 기준을 충족하는 문하생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그를 만족시킬 만큼 뛰어난 작화실력을 갖춘 만화가라면 이미 문하생 딱지를 떼고 자기 이름을 내건 만화를 그릴 준비가 됐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 겐타로는 그 긴 시간 동안 고독한 싸움을 했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휴가를 즐기지도 못하고, 취미도 없었고, 크리스마스에 외출도 못 했다. 꼬박 하루에 15시간 이상씩 그림만 그렸다. 작화 디테일을 보면 '한 땀 한 땀 그렸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그는 몇 날 며칠을 밤새워 그림을 그리고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음부터 다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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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에는 벚꽃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겐타로는 베르세르크를 연재했던 잡지에 정기적으로 코멘트를 남겼다. 이 짧은 일기를 읽으면 마음이 좋지 않다.

"40도 이상의 고열이 있었는데 쉬는 날은 1년에 2일밖에 없었다."(1993년) "매년 크리스마스에도, 설날에도 일하고 있다. 가끔씩은 설음식을 먹고 싶다."(1994년) "오랜 시간 동안 사람과 만나지 않으면 말을 잘 못하게 된다."(2002년) "과로로 또다시 쓰러졌다."(2005년) "올해에는 벚꽃을 실제로 볼 수가 없었다."(2011년)

한 인간에게 주어진 에너지에는 총량이 있다. 겐타로는 에너지 대부분을 베르세르크에 쏟았다. 그래서 그의 만화는 완벽에 가깝다. 하지만 만화 바깥의 삶을 돌보지 못했다. 칙칙한 작업실 안에 있느라 수십 번이나 봄을 놓쳐버렸다.

가츠가 끝나지 않을 싸움임을 알면서도 계속 검을 휘둘렀듯이, 작가도 묵묵히 그리고 또 그렸다. 어떤 완벽주의자들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붙잡고자 자기 자신을 통째로 내던진다.

그는 겨우 55세라는 나이에 떠났다. 30년 이상을 연재하고도 베르세르크는 미완으로 남았다. 날마다 영혼 한 방울까지 쥐어짜며 사는 사람답게 그는 2010년대 들어서부터 건강 문제로 여러 차례 휴재했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돌아왔다.

비록 속도는 더 느려졌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초월적 의지로 그림을 그렸다. 몸이 부서지는 와중에도 그림은 견고했다. 이런 천재들의 집념은 축복이자 저주다. 가츠가 밤만 되면 대검을 휘둘러야 했듯이, 겐타로도 운명이 그를 강제로 멈춰 세울 때까지 계속 싸웠다.

베르세르크를 사랑한 사람들은 가츠의 처절한 전투를 오랫동안 기억할 테다. 그리고 가츠 못지않게 외로운 사투를 벌인 작가를 생각할 것이다.

[조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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