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 10여명 ‘군부 반대’ 이탈…일본 원정서 10 대 0 완패
2016년 동남아시아 4강 등 민주화 10년 성과 물거품 위기
역대 ‘최약체’ 미얀마 축구 국가대표팀이 28일 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예선전에서 일본에 10 대 0으로 패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도 일본에 크게 뒤지는 미얀마는 주축 선수들의 무더기 이탈로 경기 시작 전부터 이미 패색이 짙었다.
국가대표팀 주장이자 미얀마 대표팀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베테랑 수비수 조 민 툰, 현역 공격수 중 국가대항전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조 코 코 등 국가대표 선수 10여명이 군사정권하에서는 미얀마 대표로 경기에 뛰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대표팀 골키퍼 조 진 텟은 “민주주의를 회복할 때까지 거리에서만 축구를 하겠다”고 했다.
선수 선발부터 애를 먹으면서 미얀마 대표팀은 일본 입국 일정도 한 주 늦춰야 했다. 미얀마 대표팀 감독은 출전을 거부한 선수들을 이해한다면서도 “미얀마 시민의 응원을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대표팀 소집에 불응한 조 진 텟은 전날 AFP통신에 대표팀 동료들을 향해 “전 세계 관중 앞에서 (군부에 항의하는 의미로) 세 손가락 경례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 손가락 경례는 없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경기 중 어떠한 정치적 의사표현도 금하고 있다. 게다가 미얀마축구연맹은 이번 대표팀 소집 과정에서도 선발에 불응한 선수들에게 출장정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압박한 바 있다.
미얀마 축구대표팀은 원래 1966·1970년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할 정도로 아시아의 강호로 꼽혔다. 하지만 군부의 장기집권이 본격화된 1970년대부터 침체에 빠지기 시작했다. 무기·마약 밀매 혐의를 받는 친군부 인사가 축구 구단주를 맡으면서 축구팀들이 제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군부는 1988년 민주화 시위가 발생하자 5명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고 리그를 중단시켰다.
군부가 정권을 민간에 이양할 계획을 내놓은 2010년대 들어서야 미얀마 축구대표팀도 다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제재 빗장이 조금씩 풀리며 FIFA가 미얀마에 축구교실 설립 등을 지원했고, 재능 있는 유망주들이 발굴됐다. 2014년 미얀마 19세 이하 축구대표팀은 아시아대회 4강에 진출했고, 2016년에는 동남아시아축구대회 4강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군부가 정권을 움켜쥐면서 미얀마 축구는 다시 앞날을 가늠할 수 없게 됐다. 1988년 리그 중단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한 한 미얀마인은 아사히신문에 “미얀마에서 다시 평화롭게 축구를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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