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
지난 2월 미얀마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군 총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은 지난해 외교관들과의 만남에서 그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했다. 그의 욕망은 쿠데타 이후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정년연장용 쿠데타?
미얀마의 반군부 시위대가 쿠데타를 일으킨 군 총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의 사진을 밟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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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만해도 그의 정치생명은 머잖아 끝날 것처럼 보였다. 오는 7월이면 65번째 생일을 맞아 정년퇴직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쿠데타를 선택하고 재빨리 ‘셀프 정년연장’을 했다. 현지매체 이라와디는 20일 군부가 쿠데타 직후 군 사령관의 정년 규정을 개정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킨지 사흘만인 2월4일 65세를 정년으로 정한 기존의 규정을 삭제하고, 새 정년 기준은 설정하지 않았다. 민 아웅 흘라잉이 군 총사령관직에 평생 머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평생 집권을 꿈꾸던 그에게 정년 규정은 늘 장애물로 작용했다. 민 아웅 흘라잉은 2011년 55세의 나이에 군부 출신 독재자 탄 쉐에 의해 군 총사령관 후계자로 지목됐다. 단숨에 군부 2인자가 됐지만, 당시 군 사령관의 정년은 60세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의 정년을 2년 남긴 2014년에도 군부는 새훈령을 발령해 사령관의 정년을 65세까지 5년 연장했다. 번번이 그의 발목을 잡던 정년 규정을 이번엔 아예 폐지한 것이다.
2015년과 지난해 총선의 결과가 달랐다면 민 아웅 흘라잉도 정년연장에 집착하지 않았을 수 있다. 군 고위 사령관은 정년퇴직 후 군부 정당인 ‘연합연대개발당(USDP)’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 아웅 흘라잉처럼 군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면 군부 지원하에 대통령, 못해도 부통령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미얀마 국회는 세명의 대통령 후보자 중 국회의원(총 664명)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나머지 두 명을 부통령으로 선출한다. 군부가 작성한 2008년 헌법은 국회 전체의석의 25%(166석)를 군부에 할당하도록 하고 있어, USDP가 최소 167석을 얻는다면 민 아웅 흘라잉도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USDP는 2015년 총선에서 42석을, 2020년 33석을 얻는데 그쳤다.
■선거 못이기자 반대파 파괴
2015년 11월 미얀마 총선 직전 민주주의민족동맹을 이끄는 아웅산 수지 여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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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이길 수 없게되자, 민 아웅 흘라잉은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제는 상대방을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미얀마나우는 21일 군부가 지명한 선거관리위원회장이 “부정선거 의혹이 있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해산하고 지도부를 반역죄로 기소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오는 24일에는 NLD를 이끌던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 군부는 쿠데타 이후 뇌물 수수 혐의 등 최장 40년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는 7가지 혐의로 아웅산 수지 고문을 기소했다. 일부 혐의라도 유죄가 선고되면 75세인 아웅산 수지의 향후 정치활동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군부 쿠데타만 10번을 넘게 일으킨 태국의 군부를 떠올리게 한다. 2006년 태국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축출한 후, 탁신이 이끌던 집권당 ‘타이락타이’를 해산시키고 지도부의 정치활동 금지를 명했다. 그럼에도 2007년 총선에서 친탁신파가 승리하자, 이듬해엔 사법을 동원해 친탁신파 의원들과 탁신을 몰아냈다. 미얀마 군부는 NLD 해산과 함께 구심점인 아웅산 수지를 법정에 세우며 만일의 가능성까지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민 아웅 흘라잉이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을 쿠데타 이전부터 준비해왔다는 지적도 있다. 프론티어미얀마는 지난해 8월 미얀마 내 34개 정당이 모인 회의에서 일부 정당이 선거의 공정성을 의심하며, 군부가 실권을 잡을 것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완성된 군 지휘부 인선도 심상찮다. 민 아웅 흘라잉은 영향력과 경험 측면에서 그와 경쟁할 수 있는 또래 고참 장성들을 일찍이 군부에서 정리했다. 현재는 그보다 10살 가량 어린 40~50대가 군 지휘부를 이끌고 있다. 민 아웅 흘라잉이 우리로 치면 육군사관학교에 해당하는 방위사관학교 19기 졸업생인 반면, 육해공군의 참모총장은 각각 30기, 28기, 26기가 맡고 있다.
장기집권으로 민 아웅 흘라잉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는 미얀마의 이권 사업 다수에 손대고 있는 군부 소유 미얀마경제지주회사(MEHL)의 대주주로, 연간 수십만 달러의 배당금을 챙긴 바 있다. 그의 아들과 딸도 아버지의 후광을 힘입어 6가지 이상의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도 군부와 연관돼 있다. 예컨대 그의 아들이 운영하는 의약품 관련 회사는 외국계 제약사가 미얀마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당국의 허가를 받아주는 일로 이득을 챙기고, 아들의 외식사업은 정부 소유 부지에서 운영되고 있다. 쿠데타로 수백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는 중에도 아들 소유의 리조트에서 열린 행사에는 군 고위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하기도 했다. 민 아웅 흘라잉의 집권 자체가 가족의 사업이 된 것이다.
미얀마 민주진영이 세운 국민통합정부의 대변인 닥터 사사는 로이터통신에 “군부에 복종하는 선거관리위원회가 NLD를 해산한다는 발표는 국민에 대항하여 군부통치를 연장하려는 노골적이고 비민주적인 시도”라고 말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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