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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벤츠도 ‘향기’로 기억...향기 마케팅으로 명품 가치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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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한성자동차의 자체 향수 '빠씨옹 미스띠끄' 향수와 방향제. /유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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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는 보이지 않는 유대감(invisible bond)을 만듭니다.”
향기 디자이너 레이먼드 매츠


국내 향수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9일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프리미엄 향수시장은 지난 2010년 2억4710만달러(한화 약 2758억원)에서 지난해 4억9080만달러(한화 약 5477억원)로, 10년 새 두 배 커졌다. 유통업계의 주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1980년대생인 밀레니얼세대와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Z세대)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향수를 찾으면서 관련 시장이 급성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통업계에선 프리미엄 브랜드를 중심으로 향기 마케팅(Scent marketing)이 확산하고 있다. 후각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감정과 기억, 창의력을 관장하는 부위와 같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브랜드와 어울리는 고유한 향기를 도입해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이미지와 기억을 남기기 위한 전략이다. 롯데호텔이 자체 향수인 ‘워크 인 더 우드’를 시그니엘에 적용한 것이 대표적 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공식 딜러인 한성자동차도 최근 자체 향수인 ‘빠씨옹 미스띠끄(Passion Mystique)’를 출시했다. 한성자동차가 향기 마케팅업체 아이센트의 전속 조향사인 크리스토프 로다미엘과 협업해 만든 세 번째 향수다. 한성자동차는 메르세데스-벤츠 ‘더 뉴 S클래스’ 구매자에게 이 향수와 차량용 방향제를 한정판으로 제공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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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자동차의 자체 향수 '빠씨옹 미스띠끄'. /유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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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는 한성자동차의 향수 출시 기념 세미나의 연사로 한국을 찾은 향기 디자이너 레이먼드 매츠(Matts)를 지난 14일 인터뷰했다. 그는 향수를 개발하는 작업을 “액체로 된 감정(liquid emotion)을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어떤 냄새를 맡았을 때 특정한 장소나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후각을 관장하는 대뇌 변연계와 피질이 감정과 기억력, 창의력을 관장하는 뇌 부위와 같기 때문입니다. 향기가 강력한 힘을 갖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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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센트 전속 향기 디자이너인 레이먼드 매츠.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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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사’가 원하는 향을 내기 위해 다양한 원료를 적절하게 배합하는 역할이라면, ‘향기 디자이너’는 향수를 개발하기에 앞서 제품의 전체적인 콘셉트와 방향을 결정하는 위치다. 향수를 의뢰한 고객사와 어떤 향기와 느낌을 주는 제품을 만들지 논의하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역할이다.

아이센트의 전속 향기 디자이너인 매츠는 향수업계에 30여년 동안 몸 담은 전문가다. 대표작은 크리니크의 베스트셀러 향수인 ‘크리니크 해피’와 타미힐피거의 ‘타미T’, 아라미스의 ‘서피스’ 등이다. 세계적인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향수인 엘리자베스아덴 ‘화이트 다이아몬드’ 등의 향기를 디자인했고, 가수 비욘세의 향수 개발을 돕기도 했다. 최근에는 진주 전문 브랜드인 미키모토의 첫 향수를 탄생시켰다. 본인의 이름을 내건 향수 브랜드인 ‘레이먼드 매츠’도 선보였다.

그는 향수를 개발할 때는 제품의 방향을 먼저 정한 다음, 어떤 향을 낼 지를 두고 조향사와 끊임없이 상의하고 재료를 배합해 나간다고 설명했다.

“해변을 산책하거나 산을 오를때, 드라이브를 할 때 등등 일상의 감각, 색상, 질감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입니다. 예컨대 ‘타미T’는 아내의 부탁으로 세탁기의 빨래를 건조기에 옮겨 넣으면서 떠올린 아이디어에 기반한 향수입니다. 세탁된 젖은 빨래의 깨끗한 느낌을 내고 싶었죠. 조향사 동료와 함께 빨래방을 찾아다니면서 어떤 향을 써야 그 느낌을 낼 수 있을지 고민했고, 상쾌한 감귤향 등을 활용한 향수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향기 마케팅을 원하는 기업은 충분한 사전조사를 통해 향기로 어떤 가치를 전달하고 싶은지 먼저 구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매츠는 “시장조사와 시향을 충분히 하지 않으면 비슷비슷한 향수밖에 만들 수 없다”면서 “단순히 특정한 나이나 성별로 타깃을 설정한 다음 향기를 개발하기보다 어떤 가치관을 가진 고객을 위한 제품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향수에 대한 잘못된 상식들도 짚었다. 그는 “제대로 된 향수 하나에는 70~80가지 원료가 들어가고 완성된 향수의 향기는 그 자체로 조화로운 것이기 때문에 두세 가지 향수를 겹쳐 뿌려 자신만의 향기를 만들라는 것은 완성된 그림 위에 또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향수 레이어링은 향수를 2병 팔기 위한 상술”이라고 일축했다.

최근 고급 니치 향수시장에서 유행하는 ‘맞춤 향수’도 어느 정도는 상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비자가 선택한 원료를 배합해 향수를 만드는 것이 아닌, 향수 원료를 용매에 녹여 향이 나도록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 “향수를 제작할 때는 원료를 배합해 숙성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런 맞춤 향수는 이 단계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사용하면 본연의 향이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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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센트 전속 향기 디자이너인 레이먼드 매츠.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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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츠는 본인에게 잘 맞는 향수를 고르기 위해서는 실제로 피부에 뿌린 채 하루를 보내보라고 조언했다. “시향지에 뿌리고 바로 냄새를 맡으면 향수 본연의 향을 맡지 못한다”면서 “맨 팔뚝에 향수를 뿌린 다음 하루종일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향이 본인의 취향에 맞는지 알아보라”고 권했다.

“결혼하고 함께 살다보면 배우자의 몰랐던 단점을 알게 되지 않습니까. 향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뿌린 다음 시간을 보내면, 마지막 향인 백노트(back note)까지 맡을 수 있고 본인 취향에 맞는 향수인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한 병을 모두 비울 때까지 쓰는 향수가 진짜로 본인에게 맞는 향수죠.”

유한빛 기자(hanvi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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