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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예술도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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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팔레드서울 <옛길, 꽃이 피다>전 조재익 작가 /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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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드서울 <옛길, 꽃이 피다>전 조재익 작가 /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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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신기해하고 웃겨하는 게, 나의 범종교적 신앙 생활이다. 그런데 나는 늘 꽤나 진지하다. 부모님이 불교를 믿으셨으므로 (일년에 한 번 초파일날 절에 가셨지마는) 그래도 가족들과 절에 가는 건 언제나 좋았다. 절에 가는 길은 대체로 거의 다 아름다웠다. 도선사 계곡길하며 대성사 둘레길, 환희사 꽃길, 은해사 숲길 등. 우리 나라의 모든 절은 종교이기 전에 자연이다. 문화다. 예술이다.

그러니 나는 꽃길을 따라가 부처님 앞에 너무 기쁘고 감사한 얼굴이 되는거라. 염화시중의 미소를 따라 입꼬리를 억지로라도 씰룩 올려보는거라. 보는 사람은 썩소일지언정. 아주 친한 스님도 계시다. 큰스님께 '친한' 이라고 표현하는 게 불경죄일까 싶지만 그냥 진짜 마음이 가까운 걸 어떻게 하나. 지난 십여년, 스님께서 정말 다정히 살펴주셨다. 첫 책 냈을 때 백 권 사주신 것은 뼈에 새겨뒀다.

딸이 고3때 난데없이 교회를 다니겠다 했다. 지치고 힘든 맘, 하나님께 기대고 싶다고. 혼자 보낼 수 없어 같이 다녔다. 옥인동의 작은 교회. 목사님은 조근 조근 1시간 예배를 드렸는데, 평균 연령 너무 높은 신도들은 많이들 졸았다. 옆자리 할아버지는 코도 골았다. 나는 하나님도 모르고 성경도 잘 몰라서 열심히 들었다. 내가 또 듣는 거 하난 기똥차게 잘 하니까. 눈을 반짝거리며 경청하니 조근 조근 목사님의 말씀은 자기계발서 저리가라 하게 각성 효과가 높았다. 심지어 괴로운 일의 답이 들어있기도 했다. 오, 할렐루야!

그런데 딸은 대학을 가자마자 교회를 안갔다. 남친이 생기자 하나님 대신 걔를 만나러 갔다. 나는 하나님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혼자 다녔다. 저 힘들 때 기대 놓고 저리 내빼는 딸 대신 용서를 구했다. 그렇게 3년 다녔더니 아니에요 도망가도 집사를 주셨다. 자격 미달에 못난 내가 죄송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럼 믿음의 성도로 거듭나면 되건만, 참회의 기도만 실컷 한 후 더는 가질 못했다.

엄마는 작년에 개종을 하셨다. 몸도 아프셨고 절은 너무 머니 집 가까이 자주 갈 수 있는 성당에 가셨다. 평생 절 하는 뒷태를 봐온 나는 엄마의 미사포가 어색했다. 세례식날 수녀님께서 이제 큰 따님도 오셔야지요! 다정하게 눈을 맞추시는데 또 그만 네애! 하고 크고 넓은 품으로 빨려들어갈 뻔.

나는 특정 종교에 심취한다기 보다 종교가 주는 신성한 기운을 좋아하는 것 같다. 말그대로 holy한 느낌을 내 맘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리하면 나쁜 짓 몇 개는 용서해 주실 것 같고 못된 생각 몇 개도 봐주실 것 같은거지. 지금도 스님, 목사님을 종종 뵙는다. 그 분들의 다정 앞에 한껏 엄살 과다 넋두리 왕왕이다.

얼마전 팔레드서울 갤러리 전시에 들렀다. 조재익 작가님의 <옛길, 꽃이 피다>展. 아, 전시장 가운데 서 있으니 마음에 영성이 깃드는 기분. 그림 속 부처님의 불두에 피어오른 꽃들도 신비로웠지만, 미술관에 가면 늘 영성의 경험을 하곤 한다. 덩그라니 빈 공간, 공간을 압도하는 예술, 미추의 경계가 없고 시비의 한계가 없는 안온을 맛볼 수 있지. 알랭 드 보통도 미술관에 가는 것은 흡사 종교적 감흥과도 같다고 말했다.

불이문을 향해 걷는 수행자의 뒷모습이 아득하다. 거대한 부처님 얼굴 앞에 서자 저절로 마음이 수그러진다. 표현 기법의 독특이나 환상적인 색채에 감탄하다가 뒷걸음질 쳐 그 자리에 머물게 된다. 잠시지만 구도의 순간을 맞이하므로. 하심이 생겨나므로. 나도 모르게 기도하는 내 마음을 만나게 되므로.

그림 앞에서 오래 서성였다. 충만한 깊음을 받아들이며. 그런다고 내 죄를 씻기에는 택도 없겠지만. 그래도 빛이 가득한 전시장에서 잠깐이지만 분명히 나를 향한 부처님의 미소를 보았다. 괜찮다며, 다 괜찮다며. 안다며, 다 안다며. 끄덕이며 나오는데 주머니가 따뜻한 것들로 가득차 있었다.



임지영 우버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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