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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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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입니다] 늦깎이 아빠의 육아휴직기

옹알이부터 뒤집기, 걸음마까지 아이 성장 지켜볼 수 있었던 시간

“그 기억이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2018년 4월 서른아홉,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첫째 아들 세민이와 처음 만났다. 서른일곱에 결혼을 하고 2년 만이었다. 곧 있으면 마흔이었기에 그때만 해도 ‘그냥 되는 대로 한 명만 낳아 잘 키워야지’라고 생각했다. 업무적으로 한창 일을 많이 하는 시기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게임, 친구 만나기, 야구 시청, 영화 보기 등 내가 좋아했던 취미 활동과 영원히 이별해야 하는 건 아닌지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를 키우는 것은 희생이 아니라 오히려 내게 지속적으로 행복감을 줄 수 있는 최고의 마법 주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선일보

장영진(오른쪽 위) 보건복지부 서기관은 첫째 세민이가 태어난 지 100일 정도 지났을 무렵 7개월간 육아 휴직을 하며 아이를 돌봤다. 지난 3월엔 둘째 세준이가 태어났다. 장 서기관은 “아이들은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최고의 마법 주문 같다”고 말했다. /장영진 서기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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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애를 낳고 100일 좀 지나 7개월간 육아휴직을 했다. 이전까지 ‘휴직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다소 늦은 서른두 살에 공직에 들어왔기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있었다. 하지만 100일이 지나는 사이에 ‘좀 더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휴직을 결심한 덕분에 옷에 똥오줌 다 묻히던 갓난아기 때부터 몸 뒤집기, 옹알이하기, 드디어 혼자 한 발짝씩 걸음마를 하는 것까지 아이의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그 기억들이 지금도 나를 지속적으로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는 것을 느낀다.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던 매몰된 삶에서 벗어나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지금도 첫째를 볼 때면 말문이 트이기 전 옹알대던 모습이 며칠 전 기억마냥 새록새록 떠올라 마냥 웃음이 나온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왜 결혼한 유부남들이 전부 카카오톡 프로필을 아이 사진으로 채우나 했었는데, 지금은 내 프로필이 전부 아이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다. “아빠 언제 와? 보고 싶어. 회사 사장님이 왜 아직 안 간대?” 저녁 9시, 퇴근이 늦어질 때 영상 통화로 보는 첫째 모습은 하루의 힘든 일을 모두 잊게 만든다.

올해 3월엔 둘째 세준이가 태어났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 너무 늦은 나이는 아닌가 하는 불안도 있었지만 ‘하나 더 낳자’는 결정에 망설임은 없었고, 낳아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왜 잠만 자”라며 갓난아기 옆에 누워있는 첫째까지, 두 아이를 보고 있으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충만감을 느낀다. 한 명일 때보다 육아는 두 배로 힘들어졌지만 행복감은 그 이상으로 큰 것 같다.

첫째가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처음 알게 해줬다면, 둘째는 형제가 우애 있게 잘 지내도록 하는 것도 부모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다. 둘째를 안고 있으면 첫째가 쪼르르 달려와 자기도 안아달라고 생떼를 쓰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우면서도, 가끔은 ‘어린 형에게 동생은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말문이 트인 첫째가 얼마 전 스스로 “요즘 스트레스가 많다”고 말을 했다. ‘아니, 얘가 어디서 이런 용어를 배웠대?’라는 놀라움과 함께 ‘둘째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 그렇게 불안했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이 일 이후 둘째 사진이었던 카카오톡 프로필도 두 형제가 같이 나온 사진으로 바꿨다.

1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사태는 육아에 대한 새로운 도전인 것 같다. 체력이 부쩍 늘어 뛰놀고 싶어하는 첫째가 밖에 많이 나가지 못하니 답답해하는 게 눈에 보인다. 실내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첫째가 지금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아빠 휴대전화로 보는 소방차 동영상이다. 실제 소방차를 보는 것보다 소방차가 나오는 동영상을 더 좋아해 걱정이 커지고 있다. 아내는 ‘동영상 많이 보여주면 안 된다’고 뭐라 하지만 아들의 간절한 요구를 매번 거부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집에서 생기는 이런 사소한 일들이 코로나로 힘든 일상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업무 스트레스에 지쳐 아내와도 많이 싸웠을 것 같은데, 아이들로 인해 아무리 힘든 일도 헤쳐나갈 수 있는 무한한 힘을 얻게 된다. 퇴근길에 가게에 들러 가족과 함께 먹을 아이스크림을 사갈 때 소소하지만 가슴 벅찬 행복을 느낀다. 나도 여섯 살 때 처음 아버지 손을 붙잡고 야구장에 갔던 기억이 생생한데, 코로나가 끝나면 아이와 함께 야구 보러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장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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