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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윤평중 칼럼] 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 우리 명운을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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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질서 재편하는 미·중 냉전, 전 지구적 차원의 거대 게임

동아시아서 熱戰 가능성 커져… 1주일 후 한·미 정상회담 중요

내정에 무능하면 민생 어렵지만 외교에 무지하면 나라 무너진다

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 한가운데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5월 21일). 지구적 신(新)냉전으로 비화한 미·중 패권 경쟁 ‘사이에 낀’ 대한민국이 위태롭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고집하기엔 미·중 대결이 워낙 격렬하다. 국제정치적 현실주의와 ‘깊고 넓게 역사 읽기’를 통합한 국가 대전략만이 우리를 지킨다. 내정(內政)의 실책은 고칠 수 있지만 국가 안보와 외교는 한 발 삐끗하면 나라 전체가 나락에 빠진다.

조선일보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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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게임은 원래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의 각축전을 가리키는 국제정치학 용어다. 러시아의 남진(南進)을 막아 인도와 중동의 패권을 지키려는 영국의 국가 전략은 1813년 러시아·페르시아 조약에서 촉발돼 100년간 지속된 바 있다. 세계 제국과 지역 강국들의 전략 경쟁이 얽힌 중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은 오늘날까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 문제도 이것과 관련이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은 7세기, 16세기, 20세기, 21세기에 펼쳐졌다. 수·당 제국과 고구려·백제·신라, 일본이 참전한 국제전에서 신라는 고구려·백제에도 뒤진 최약체 국가였지만 676년 삼국 통일로 최후 승자가 된다. 필사적인 부국강병과 나당 동맹이 이룬 성취였다. 1592년의 임진왜란, 즉 7년 전쟁에서는 중원 제국 명나라, ‘해 뜨는 제국’ 일본, 조선이 사투(死鬪)를 벌였다. 전쟁 후 조선이 자폐적 중세 왕조로 퇴행해 간 데 비해 중국과 일본은 제국의 지평을 확장하면서 일취월장한다. 그레이트 게임의 효과가 다르게 작동한 셈이다.

미국·소련·중국·일본이 개입한 20세기의 제한적 세계전쟁이자 남북 내전인 6·25전쟁은 한국을 초토화함과 동시에 현대 국가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나아가 21세기 미·중 신냉전은 경제, 무역, 외교, 문화, 군비 경쟁, 인권, 이데올로기 투쟁, 코로나 방역에서 체제 총력전으로 확산되고 있는 중이다. 미·중을 중심으로 각국이 합종연횡하면서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풍경을 우린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미·중 냉전이야말로 전(全) 지구적 차원의 거대 그레이트 게임의 전형이다. 동아시아가 그 최전선이기 때문에 미·중 냉전이 군사적 열전(熱戰)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가장 큰 곳도 동아시아다. 특히 한반도와 대만 상황이 위중하다. 한반도와 대만의 운명, 홍콩과 남중국해 분쟁이 미·중 대결과 맞물려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핵 위기도 동아시아 전략 경쟁의 주요 변수이지만 홍콩 일국양제(一國兩制)를 파괴한 제국 중국엔 대만이 다음 과녁이다. 중국몽(中國夢)의 필수 조건이 ‘하나의 중국’이므로 대만은 군사적으로 ‘태풍 앞의 촛불’이다. 미국이 대만 수호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도 불확실성을 키운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가 한국에 끼칠 여파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역사철학과 국제정치학적 통찰을 토대 삼은 그레이트 게임은 한반도 현실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모든 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에 결정적 영향력을 끼친 유일한 제국이 중국이다. 홍콩과 신장 위구르 사태가 입증하듯 중국엔 법치주의와 인권, 민주주의와 다원주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을 빙자해 20세기에만 자국민 6000만명 이상을 살해한 폭압적 독재 국가인 중국은 국경을 접한 14국 모두와 영토 분쟁을 벌였을 정도로 공격적이다. “한반도는 원래 중국 땅이었다”는 시진핑 주석의 말이 경악스럽기 짝이 없는 이유다. 핵보유국 북한이 미·중 냉전에서 중국에 필수 자산이 되면서 북핵 폐기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우리로서는 참으로 뼈아픈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정치적 현실주의를 외면하고 감상적 민족주의에 집착해 외교·안보적 재앙을 자초했다. 세계 10대 경제 강국 한국의 대통령이 시진핑과 김정은에게 굴종하면서 경멸과 천대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냉혹한 국제정치의 당연한 결과다. 문 정권의 시대착오적 종중(從中)·종북·반일 노선은 북핵 앞에 벌거벗은 대한민국을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 1주일 남은 한·미 정상회담은 한국의 외교·안보 파탄 상황을 바로잡는 자리여야 마땅하다. 최소한 백신 외교라도 성사시켜 국민 생명을 살리는 것이 지도자의 책임 윤리다. 통치자가 내정에 무능하면 민생이 어려워지지만 외교·안보에 무지하면 국가가 무너진다. 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른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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