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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세상읽기] 변방조차 특권인 세계 / 조이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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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겨레

조이스 박ㅣ영어교육가·에세이스트

지난겨울 록다운 동안 드디어 나는 유튜브로 밴 라이프(van life) 동영상을 어림잡아 수백 편을 보았다. 램 프로마스터와 같이 우리가 ‘봉고’라고 부르는 밴을 집으로 개조해서 미국 전체, 혹은 다른 대륙으로 떠돌아다니며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담은 동영상들이었다. 얼마나 많이 봤는지 나중에는 독일어 동영상까지 떴지만, 독일어를 하나도 못해도 밴 구조를 설명을 할 때 대충 알아들을 정도였다.

수도와 전기 등에 관이나 선으로 연결되지 않은 상태를 ‘오프그리드’(off-grid)라고 하고, 이렇게 오프그리드 상태로 정해진 길인 고속도로를 벗어나 자유롭게 떠돌며 여행하거나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분도킹’(boondocking)이라고 부른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갇힌 상태에서 보게 된 이 동영상들은 내게는 답답함을 벗어날 수 있는 통로였고, 주택 담보대출이나 비싼 임대료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 많은 현대인들과는 달리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지 않는 지혜로운 삶의 한 방식으로 보였다.

그러다가 제시카 브루더가 쓴 책 <노마드랜드>를 읽었고, 이 책을 원작으로 한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노매드랜드>도 보았다. 충격을 받았다. 이 책과 영화에서 그려지는 밴 라이프 혹은 RV라고 불리는 캠핑카에서 사는 삶은 얽매인 삶에 대한 대안으로의 선택이 아니었다. 2007년 미국을 강타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미국의 중산층이 하나둘씩 몰락해가면서 궁핍한 노년의 삶으로 내몰려 붙박이 집과 고향을 떠나 일감을 찾아 떠도는, 변방으로 몰린 삶을 그리고 있었다. 1930년대 더스트볼(Dust Bowl)이라 불리던 먼지폭풍으로 농사와 목축을 하던 터전을 잃고 캘리포니아로 일감을 찾아 떠났던 오클라호마 주민들의 삶을 조명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21세기에 재현되는 장면을 본 기분이었다. 오클라호마 출신 떠돌이들이 캘리포니아에서 오렌지를 따는 계절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이동한 데 비해 다국적 거대 유통기업인 아마존의 물류센터, 캠퍼포스에서 계절 노동자로 일하는 것만 다를 뿐이었다.

변방으로 내몰린 노년의 삶의 씁쓸함과 슬픔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밴 혹은 캠핑카 생활자들이 모이는 공동체는 정말로 흥미로웠다. 영화에도 나오는 밥 웰스를 위시한 일단의 워캠퍼들은 문화적인 혜택을 누렸던 중산층이었기에, 이들이 일구는 공동체에는 노래와 음악과 춤과 이야기가 살아 있고, 평등하나 끈끈한 결속이 있는 (그래서 이상적으로까지 보이는) 연대를 이루고 있었다. 사회적 지위와 부를 내려놓은 변방에서는 이러한 연대가 가능한 걸까 싶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문득 ‘이 공동체에는 왜 흑인이나 동양인이 한 명도 없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내가 이전에 보았던 수백 편의 밴 라이프 동영상에도 유색인종은 거의 없었다. 이들 중 압도적인 다수는 백인 이성애자 커플이다. 홀로 돌아다니는 백인 여성이 일부 있으나, 이들이 나오는 동영상 제목에는 반드시 ‘여자 혼자 밴 생활’이라는 표현이 따라붙는다. 흔치 않으니 저런 제목이 붙지 싶다. 흑인 여성은 딱 두 명을 보았고, 백인 여성 레즈비언 커플 셋 정도, 백인 게이 커플 역시 비슷하게 보았다. 아시아 커플 역시 단 한 커플뿐이었다. 흑인 남성 중에는 밴을 생활을 할 수 있게 바꾸어 판매하는 젊은 남성이 한 명 있었을 뿐, 밴 라이프를 즐기는 남성 중에선 단 한 명도 못 보았다.

중산층에서 몰락해 변방으로 내몰린 라이프스타일조차도 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특권이었던 셈이다. 특히 흑인 남성의 경우, 범죄자로 오인을 받아서 수시로 검문당하고 의심을 받는 통에 밴을 개조해서 자유롭게 자기 나라의 자연을 누비며 산다든가, 계절 노동자로 여기저기 떠도는 삶은 언감생심인 것이다.

변방의 라이프스타일조차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특권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원래 특권이란, 누리는 자에게는 공기와 같이 당연해서 있는 줄 모르는 법이다. 알고 보면 ‘노마드’(유목민)도 아무나 될 수 없는 세상에서 살면서, 우리는 내게 당연하나 남에게는 특권인 부분을 과연 헤아릴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한참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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