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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차현진의 돈과 세상] [19] 축의금은 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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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본은 결혼축의금을 그냥 전하지 않는다. 노시(のし)와 미즈히키(水引)라는 섬세한 장식이 달린 특별한 봉투에 넣어 후쿠사(袱紗)라는 비단보자기에 싸서 전한다. 돈을 마음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보아야만 이해가 된다. / creema.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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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결혼의 계절이다. 결혼식 풍습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부산·경남 지역 풍습은 상당히 특이하다. 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하객들에게 혼주가 새 돈 1만~2만원이 든 봉투를 일일이 전한다. 일종의 교통비다.

부산·경남의 풍습은 일본의 한가에시(半返し) 풍습에서 온 것이다. 경조사 때 받은 위로나 축하를 상대방에게 돌려주는 전통이다. 귀한 것을 사이좋게 나누어 중요한 순간을 함께 기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돌려주는 양은, 문자 그대로 절반이다. 돈으로 돌려줘도 좋고, 물건으로 돌려줘도 좋다.

돈과 물건은 애초에 잘 구별되지 않았다. 남태평양 멜라네시아에서는 부족끼리 교류할 때 조개 팔찌(음왈리)와 자개 목걸이(술라바)를 주고받았다. 경제학자들은 그것들을 화폐라고 이해하지만, 오늘날 화폐와는 성격이 크게 다르다. 사유재산을 가진 개인끼리 하는 거래가 상행위라면, 원시 공동체 구성원 간의 교환은 문화적 행위다. 문화적 행위인 교환에 쓰이던 물건은 화폐 즉, 지급수단으로 볼 수 없다. 마음의 상징이다.

명도전(明刀錢)은 철기시대 유물이다. 칼처럼 생긴 명도전은 산둥반도와 한반도 북쪽에서 발견되는데, ‘명’이라는 글자만 쓰여 있을 뿐 액면 금액과 단위가 없다(연나라의 계산 단위는 化였고, 고조선은 계산 단위가 없었다). 무게와 품질도 제각각이다. 오늘날 화폐와 확연히 다르다. 명도전은 화폐가 아니라 중국 연나라와 고조선의 친선 관계를 확인하는 기념품 즉, 물건에 가깝다.

일본은 결혼 축의금을 그냥 전하지 않는다. 노시(のし)와 미즈히키(水引)라는 섬세한 장식이 달린 특별한 봉투에 넣어 후쿠사(袱紗)라는 비단 보자기에 싸서 전한다. 돈의 가치 저장 기능만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허례허식이다. 돈을 마음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보아야만 이해가 된다.

결혼의 계절이다. 축의금이 오간다. 그것은 마음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액수는 중요하지 않다. 인공지능(AI)이 아닐진대, 인간의 마음이 어찌 숫자로 표현되겠는가!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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