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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마음으로 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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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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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에 살고 있는 청년이 학비를 벌기 위해 여행 가이드를 했다. 어느 날 그는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단체 여행객들의 안내를 맡게 되었다. 청년이 난감한 표정을 짓자 여행단장이 말했다. “절대로 우리를 장님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보통사람들에게 하듯이 안내해 주십시오.”

이윽고 버스가 출발했다. 청년은 여행객들에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평소처럼 안내하기 시작했다. “오른쪽에 보이는 저 푸른 바다는 태평양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저 산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할리우드입니다. 언덕위에 쓰인 영어 간판이 보이시죠? 할리우드, 그렇습니다. 저곳은 저 유명한 영화들이 만들어지는 영화의 본고장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청년의 안내에 따라 차창의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끄덕였다. 자기들끼리 손가락질을 하면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본 청년은 시각장애인들이 일부러 장님 흉내를 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들은 분명히 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일주일의 여행기간이 끝나자 시각장애인들은 청년에게 다가와 악수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정말 좋은 관광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작가 최인호의 ‘산중일기’에 나오는 일화이다.

사물을 보려면 눈이 필요하다. 하지만 눈은 물체의 상이 통과하는 렌즈일 뿐이고, 사실 물체를 보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이 딴 데 있으면 눈으로 대상을 보더라도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사서삼경의 하나인 ‘대학’에는 ‘심부재언 시이불견(心不在焉 視而不見)’이라는 구절이 있다. ‘마음에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를 것이다.

우리가 관심(關心)을 두지 않으면 사물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관심은 어떤 것에 마음을 두고 주의를 기울이는 준비 단계이다. 그런데 사물을 제대로 보려면 거기서 한 발 나아가 ‘마음으로 보는’ 관심(觀心)의 단계에 들어서야 한다.

부처가 팔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고는 제자 아난다에게 물었다. “무엇을 보고 있느냐?” “부처께서 팔을 들고 손가락을 구부려 주먹을 쥔 모습을 봅니다.” “무엇으로 보느냐?”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난다야, 눈은 다만 대상을 비출 뿐이고, 보는 것은 마음이니라.” 진짜 세상을 보려면 바깥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에서 강조한 것도 눈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마음으로 보는 법을 알려준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동화작가 정채봉은 ‘오늘 내가 나 자신을 슬프게 한 일들이 뭐가 있을까’ 하고 돌아봤더니 이런 게 떠올랐다고 했다.

꽃밭을 그냥 지나쳐 버린 일.

새소리에 무심하게 응대하지 않은 일.

밤하늘의 별들을 세지 못한 일.

정채봉이 세 가지를 꼽았지만 우리들이 지나치는 일상의 풍경은 얼마나 많을까. 그리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아름다운 사람은 아름다운 가을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늘의 조각 구름, 황금빛 저녁놀, 푸르스름한 산 기운... 영혼을 파고드는 눈앞의 풍광에 무덤덤하다면 우리는 눈뜬 장님일 것이다. 새의 노랫소리에 아무 감흥이 없다면 영락없는 귀머거리일 것이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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