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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일사일언] 시험대 오른 그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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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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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미 상 후보는 미국의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 달리 말해 미국의 음악 산업 관계자 약 1만1000명의 투표로 결정된다. 흔히 간과되는 점은 전체 회원의 투표가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수 전문가 그룹이 전체 투표 결과를 중간에 한 번 검토한 후 최종 후보를 승인한다. 이 기구를 ‘후보 검토 위원회’라 부른다.

후보 검토 위원회는 명단이 공개되지 않아 누가 속해있는지 모른다. 그래미의 전(前) CEO 데버라 두건이 “위원회 멤버들이 친한 사람들을 후보에 올린다”고 폭로하는 등 불공정 시비가 일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모두 성공을 거둔 ‘위켄드'가 한 분야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고 그 원인으로 위원회가 지목됐다. 위켄드는 “그래미가 부패했다”며 앞으로 모든 그래미 시상식을 보이콧하기로 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그래미는 지난 주 “후보검토위를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앞으로는 후보를 결정할 때 회원들의 투표가 그대로 반영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일명 ‘비밀 위원회’라 불렸던 천덕꾸러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투표 절차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에 그래미 역사의 중요한 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후보검토위가 생긴 이유는 소수가 시상식을 좌지우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일부 회원의 성의 없는 투표가 황당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래미 회원 모두가 그해 신곡을 꾸준히 모니터했거나 다양한 장르에 해박한 건 아니다. 1년 내내 한 가수 작업에만 열중하다 ‘들어본 음악’ 중에 투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1989년부터 최정예 소수 그룹을 만들어 1차 투표 결과를 검토하는 관행이 생겨났다.

이 조직이 없어지면, 내년에도 그냥 유명한 음악에 투표하는 회원은 있겠지만 이제는 그 결과가 무방비로 노출될 것이다. 무엇보다 큰 차이점이다. 날카로운 견제의 시선이 번뜩일 것이고, 그래미는 긴장할 것이다. 그들의 전문성이 민낯의 시험대에 오르기 때문이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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