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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송두율 칼럼] 코로나 지옥문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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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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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1일 1차 코로나 백신을 맞았다. 일원화된 유럽연합의 코로나 백신 공급체계라지만 인구 1000만의 작은 나라 포르투갈까지 백신 공급이 제대로 될지 우려했다. 그러나 백신 접종의 속도는 지금 독일이나 프랑스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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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올해 초 포르투갈은 유럽에서 코로나 위기가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였으나 얼마 전부터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해외여행은 여전히 통제가 심하지만 일상생활은 거의 정상화되었다. 반년 가까운 국가비상사태에 따른 엄격한 통제 덕분이다.

백신을 맞기 전날 옥스퍼드대학 백신그룹의 핵심 구성원으로서 ‘아스트라제네카’를 개발한 둘째 아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무더웠던 작년 여름, 하루도 쉬지 못하면서 내놓은 결과를 부모가 공유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유감스럽게도 아스트라제네카는 아니었다. 백신 접종은 의무도 아니고 선택권도 없다.

학수고대했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작년 11월 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접종 후의 부작용 문제로 인해 빚어진 논란은 아직도 있다. 서아프리카에서 1994년부터 만연해 11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열 달 만에 개발했던 탁월한 연구팀이다. 영국과 스웨덴의 글로벌 제약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가 코로나 백신 개발을 의뢰했을 때 연구팀이 내세운 조건에는 백신 가격을 아주 낮추어 가난한 나라와 계층에게도 그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야 한다는 조항도 들어 있었다.

지난달 1차 코로나 백신을 맞고
전 세계적 접종 불평등을 생각한다
미·영 등 물량 충분한 부국은 느긋
인도와 브라질 등 빈국은 아우성

백신 지재권 유예 논쟁 가열 속
“애국적 학문은 없다”는 말 떠올려

백신 연구와 개발의 성과는 단지 연구기관 사이의 경쟁만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위상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쉽게 빠져들기 마련이다. 더구나 영국이 유럽연합으로부터 완전 탈퇴하는 시점이 작년 말이었기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공급을 둘러싼 논쟁은 가열되었다.

이 과정에 전문가와 정치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백신의 선택, 나이와 직업별 접종 순위를 두고 많은 혼란이 빚어졌다. 유럽의약품청(EMA)은 백신 접종의 이득이 부작용에 따른 위험보다 훨씬 크다는 선에서 최종적인 결론을 내렸다. 유럽연합이 현재 25% 전후의 1차 백신 접종률을 보이는데 영국은 이미 인구의 약 70%에 접종을 마쳐 이제 집단면역의 문턱에 섰다고 주장한다.

‘브렉시트’를 밀어붙인 존슨 영국 총리가 부작용도 뒤따를 수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중심으로 대량 접종을 강행하자 처음에는 그의 ‘백신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유럽연합에서는 정치인들이 전문가의 의견에 너무 의존하다보니 위기 상황에 직면해 능동적이지 못하고 관료처럼 행동하는 정치인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을 당장 꺼야 한다는 절박감은 충분한 양의 백신을 확보하기 위한 국가 간 치열한 경쟁을 낳았다. 그러다보니 미국이나 영국처럼 자국 백신 개발 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이의 수출도 억제해서 충분한 물량을 확보한 나라, 아니면 이스라엘이나 아랍에미리트연합처럼 미리 사재기라도 할 수 있는 나라, 그리고 가난한 나라 사이에는 코로나 방역에 있어서 심한 불평등 구조가 조성되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올해 말 세계 인구의 14%를 점하는 부자 나라가 코로나 백신의 51%를 차지하고, 세계 인구의 4분의 1은 코로나 백신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브라질에서 이민 온 우리 가사 도우미가 연초에 고향에 다녀오더니 브라질의 참상을 ‘인페르누’(지옥)와 같다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브라질은 지금까지 58만명에 달하는 코로나 사망자를 낸 미국 다음으로 많은 37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코로나 위기 상황을 의도적으로 무시해서 결국 큰 재앙을 불러온 보우소나루 대통령에 대해 상원이 조사하도록 하는 결정을 최근 대법원이 내렸을 정도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무모한 판단에 대해 전문가들이 계속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브라질은 록다운 없이도 집단면역에 도달할 것이라며 고집을 피웠고, 그동안 네 명의 보건장관을 경질했다.

비슷한 상황을 인도에서도 볼 수 있다. 전 세계 코로나 백신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하고도 인도가 겪고 있는 최근의 참상을 표현할 때 역시 ‘지옥’ 말고는 다른 적당한 단어가 없는 것 같다. 가족이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하늘을 찌르는 듯한 처절한 통곡 소리와 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마지막 안간힘을 쓰면서 산소 페트병을 움켜잡고 있는 환자의 모습은 참혹하기만 하다. “여기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라는 단테의 <신곡>의 ‘지옥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브라질 대통령 보우소나루와 인도 총리 모디를 포퓰리즘의 측면에서 비슷하게 여기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모양은 비슷해도 결이 서로 다르다. 코로나를 감기 정도로 생각하거나 백신보다 말라리아 치료제가 더 효과 있다고 주장하는 보우소나루와 달리 ‘하이테크 포퓰리스트’로도 불리는 모디는 코로나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록다운도 단행했다. 그러나 이때 얻은 자신감으로 올해 3월 중순부터 시작된 2차 코로나 대량 확산 때 손을 놓았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자신이 몸담은 힌두민족주의의 신앙적 뿌리인 ‘쿰브 멜라(Kumbh Mela)’ 축제 때문이다. 갠지스강에서 목욕함으로써 죄를 씻고 삶과 죽음의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수백만의 힌두교 신자들이 코로나 방역수칙을 지킬 수는 없었다. 이의 결과로 인도는 하루에 40만명의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정치인이 전문가의 등 뒤로 숨어 책임을 회피하거나, 아니면 전문가의 의견을 아예 무시해서 많은 인명을 희생시키는 모험을 감행하는 행태를 보게 된다. 그래서 정치인의 덕목으로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을 강조한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세계 최대의 백신 업체인 ‘인도 세륨연구소’가 작년 5월 옥스퍼드대학의 백신팀으로부터 빗방울 20개 정도의 양에 지나지 않은 코로나 백신 재료를 넘겨받았다. 이때부터 시작해서 인도는 현재 하루에 200만도스의 코로나 백신을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도 인도는 자국민의 건강을 지켜주는 백신이 턱없이 부족해 계속 허덕이고 있다. 백신을 자국 내에서 생산하지만 이는 지식재산권을 통해 전적으로 보호되는 글로벌 제약기업을 위한 생산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인도가 작년 10월 이미 세계무역기구(WTO)에 제기했다. 지구촌의 코로나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에게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지식재산권을 잠정적으로라도 유예해야 한다는 주장을 세계보건기구(WHO), 유네스코는 물론 ‘국경 없는 의사회’를 포함한 전 세계 375개 사회 운동단체도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정작 코로나 백신을 생산하는 글로벌 제약회사와 이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주요 생산국은 그동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 전,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지식재산권의 유예 문제를 언급하자 이들은 그러한 요구를 즉각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어려운 코로나 백신의 개발에 수준이 미달하는 군소 제약회사들이 무분별하게 뛰어들어 개발에 혼란과 이에 따른 위험을 가중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또 지식재산권이 보호받지 못하면 앞으로 백신의 연구와 개발을 향한 창의성이 심하게 훼손된다는 우려도 표명했다. 며칠 전 포르투갈의 항구도시 포르투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는 지식재산권 문제보다 미국이 먼저 백신과 재료 수출의 금지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논쟁만 오가는 이런 답답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의학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던 괴테가 200년 전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에 남긴 경고를 떠올린다. “애국적인 예술이나 애국적인 학문은 없다. 둘 다 모든 고귀한 재보처럼 전 세계에 속한다. 선대가 우리에게 남겼거나 가르친 것을 늘 배려하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보편적이며 자유스러운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둘 다 진흥될 수 있다.” 혹독한 코로나 수업 시대를 맞고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한 호소처럼 들린다.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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