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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이진우 칼럼] 미국이 베이징올림픽을 보이콧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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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4월 25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거창한 제목의 기사가 웹사이트에 떴다. '시장의 폭주가 목재에서 주식, 비트코인까지 모든 것을 끌어올리다(Wild Market Ride Lifts Everything From Lumber to Stocks to Bitcoin).' 필자에겐 이게 신호탄처럼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사흘 뒤인 같은 달 28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변곡점을 찍었다. 그는 정례 브리핑에서 "시장의 일부에 거품이 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시장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발언이었다. 같은 날 연준 성명서에도 변화가 있었다. '인플레이션이 2% 밑으로 유지돼왔다'는 문장이 '인플레이션이 주로 일시적인 이유 때문에 상승하고 있다'로 변경됐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거침없이 풀었던 돈의 부작용, 자산 거품과 물가 상승을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다음 차례는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이었다. 옐런 장관은 지난 4일 한 언론사 주최 행사에서 "금리가 다소 올라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기준금리 인상 권한은 미 재무부가 아니라 연준에 있다. 하지만 미 재무부와 연준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는 건 이젠 비밀도 아니다. 이틀 뒤 연준은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자산가치 급락 가능성을 공식 경고하고 나섰다. 유수 언론과 정부, 중앙은행이 기가 막히게 장단을 맞추는 모습이다.

미국은 정치·군사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한국에 가장 중요한 나라다. 국가 경제는 물론 나와 내 가족의 일상을 바꿔놓을 수 있는 슈퍼파워다. 하물며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어지간한 기업이라면 경영계획 핵심에 미국 변수가 있다. 거대 시장이기도 하지만 글로벌 정책 변화의 진원지가 미국이다.

이런 미국이 코로나19 충격에서 깨어나 선회를 시작했다. 지난 2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원료의약품, 희토류 등 4대 품목의 글로벌 공급망을 검토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시작된 대중 무역전쟁의 전선을 확 넓혀놓은 것인데, 글로벌 실물경제의 고삐를 미국이 확실히 틀어쥐겠다고 선언한 격이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세계 금융의 물길도 바꿔놓고 있다. 이젠 양적완화 축소와 점진적 금리 인상이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고 각오해야 한다.

한국은 이런 미국을 제대로 분석해 국익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을까. 우리 기업들은 늘 그렇듯 잘 대응하고 있다. 쑥쑥 늘어나는 대미 수출이 이를 방증한다. 삼성전자 같은 회사는 포천이 선정하는 가장 존경받는 5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얼마 전 국가별 선호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경제적 번영을 위해 미국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중국(19%)의 세 곱절이 넘는다. 현실 인식이 이렇다면 말썽 날 일이 없다.

문제는 뒷감당 못하는 정부와 일부 정치권 인사다. 우리 처지를 감안하지 않은 채 미국을 자극하는 모양새가 영 불안하다. 중국에 치우친 듯한 언사가 특히 꺼림칙하다.

얼마 전 만난 기업인이 불쑥 질문 하나를 던졌다. 미국이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동맹국들과 공동 보이콧한다면 한국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까. 대답하기가 망설여졌다. 이 기업인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만약 한국 정부가 베이징올림픽 참가를 결정한다면 무조건 달러를 사야겠다고.

오는 21일 백악관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린다. 적지 않은 국민, 특히 기업인들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한미동맹, 북핵 이슈뿐만 아니라 반도체 전쟁 등 경제 분야에서도 논의할 게 많은 회담이다. 부디 실용적인 대화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이진우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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