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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이슈 물가와 GDP

[시시비비]'4% 성장'에 GDP 다시 찾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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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국민 삶의 척도를 나타내는 지표는 오랫동안 경제학자들의 연구대상이다. 소득 뿐 아니라 인간 가치를 최적으로 반영할 지표를 찾는 건 해묵은 숙제와도 같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전문가들은 "숫자에 불과한 경제성장률 보다 삶의 질과 행복도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정책적 배려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가시적 변화는 없었다. 최근엔 한국은행이 국민의 ‘삶의 질’을 측정하기 위한 지표 개발에 나섰다.


지난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BLI(Better Life Index)’ 지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각국의 ‘더 나은 삶’을 지수로 나타낸 것인데, 경제성장률(GDP)에 담을 수 없는 복지 관련 요소를 대거 반영한 것이다. 소득 뿐 아니라 ‘평등 정도’ ‘일과 삶의 균형’ 등 다양한 요소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는 지를 종합적으로 보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BLI는 크게 11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소득과 자산’ 같은 경제 분야는 물론이고 주거, 일과 직업의 질, 건강, 환경, 웰빙, 사회적 관계, 시민참여 등 비경제적 요소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해 9월 발표된 BLI에서 우리나라는 2018년 기준 투표율과 가구 자산, 주택구매력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주거 과밀, 가구소득 분야 점수는 낮았고 근로시간에서의 남녀격차 등의 항목에서는 불평등 정도가 컸다. 지난해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소득 불평등과 자산버블이 더욱 심해진 점을 감안하면 자산과 소득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성별 뿐 아니라 세대간 불평등도 심해 중년층 고용률이 청년세대를 앞지른 반면, 장기실업률은 청년층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현 정부는 BLI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BLI 순위는 2014년 24위에서 2017년에 29위로 떨어졌는데, GDP 보다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지표에 더욱 신경을 쓰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임시절인 2018년 11월 "국민의 관심사는 성장률과 수출 위주에서 오늘날엔 고용과 소득분배 지표로 옮겼다"며 "국민 삶에서 중요한 것이 ‘삶의 질’이며, 웰빙이라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소득불균형과 양극화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포용성장정책을 꺼내든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BLI가 국민 삶 향상에 기여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소득을 높여 경제성장을 이끌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은 고용참사를 불렀고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 지원 정책은 재정부담을 키웠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재정부담은 더욱 확대됐다. 혁신을 외쳤지만 기업의 체감도는 낮다. OECD가 올해 BLI에서 한국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최근 들어 정부는 다시 GDP를 꺼내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인 10일 취임 4주년 연설에서 "올해 성장률이 지난해보다 4% 이상 오를 것"이라고 언급했다. 2019년 2%성장이 위협받았고,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을 때 GDP를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분명 달라진 대목이다. 4%대 성장률은 2010년 6.8%를 기록한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GDP는 1인당 소득과 직결될 뿐, 불평등 여부는 판단할 수 없다. 임기를 1년 남긴 정부로서도 여러 삶의 질 지표 보다 경제성과를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생산성과 GDP 수치를 간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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