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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이현청 총장의 교육읽기] 스승을 찾습니다. 제자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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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고등학교 시절 잊을 수 없는 두 분의 선생님이 계시다. 한 분은 음악 선생님이셨다. 음악 시간에 피아노를 치시며 자주 우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또 한 분은 항상 지긋한 미소를 지으시며 시를 읊으시던 국어 선생님이셨다. 마치 삶을 초월하신 듯한 모습이었다.

왜 나는 이들을 잊을 수 없는가? 그 이유는 그들이 나에게 인간으로서 정직한 모습을 보여주셨고, 내가 그의 순수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두 분은 나와 친구들에게 삶의 멋과 인간의 순수함을 가르쳐 주셨다.

가르치는 일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다. 인간의 만남이다. 인간의 만남 위에서 나눔이 함께 할 때 진정한 교육이 가능하다. 한퇴지 선생님의 교사론에 의하면, 스승은 올바른 길을 가도록 인도하는 분이요, 교육하고 전수하는 위치에 있으며, 의혹이 있을 때 이를 풀어주는 위치에 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 만나되 만남이 없고, 대화하되 만남의 대화가 없으며, 가르치되 깨우침이 없는 지식을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의 선생님은 이렇다. 학생들에게(to) 단순히 지시나 명령을 해도 안 되며, 단순히 학생들에게(at) 무심코 말해서도 안 된다. 진정으로 너와 나의 입장이 돼 학생들과 함께(with)하는 교사여야 한다. 울 줄 아는 교사, 진리 앞에 겸손한 교사가 돼야 한다.

정년을 앞둔 중·고교 교장 선생님들을 모시고 '교사론'을 주제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백발의 교장 선생님 한 분이 내게 다가와 잊을 수 없는 두 스승에 대해 말씀하셨다. 교장 선생님의 초등학교 시절 일본인 교사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일본인 교사는 학내에서 발생한 도난 사건을 이 교장 선생님께 누명을 씌웠다. 교장 선생님은 70세가 다 된 지금도 그때의 아픔과 억울함은 지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또 한 분의 교사는 다행히 좋은 기억을 남겨 주신 분이다. 항상 도시락을 학교에 두 개 싸 오셨고, 어린 시절 형편이 어려웠던 교장 선생님께 나눠 주셨다. 교장 선생님은 아직도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해 다달이 얼마간의 용돈을 드리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고마운 스승이 있다. 지금도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이다. 화학을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는 화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내가 화학실험실에서 별도로 공부할 수 있도록 늘 격려하셨다. 어느 날은 주말에 선생님 댁으로 나를 부르셨다. 놀랍게도 손수 마련한 점심이 진수성찬으로 차려져 있었다. 그날은 선생님의 생신이었다. 그날 나는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나를 이토록 사랑해 주시는 선생님의 생일마저 기억 못 하고 있었던 내가 부끄럽기까지 한 날이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요즘 학생들은 가장 좋은 스승으로 '친절하고', '새롭고 인상 깊은 말'을 해주는 교사를 꼽는다고 한다. 이는 선생님이 자기 전공지식에 자신감이 있고 인격도 성숙해야 하며, 무엇보다 권위 의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요즘은 진정한 스승도 진정한 제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스승이라는 용어조차도 생경한 용어가 됐고, 제자라는 용어 또한 익숙하지 않다. 스승과 제자가 진정한 마음으로 만남을 이루는 스승의 날을 기대하지만, 오늘날의 스승과 제자의 모습을 돌이켜보니 씁쓸한 기분이다.

/이현청 한양대 고등교육연구소장(석좌교수), 상명대·호남대 총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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