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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이규성의 전원에 산다] 당신은 '일요병(病)'이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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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일요일 저녁 잠시동안 '월요병(病)'을 앓던 때가 있었다. 다음날 출근 걱정부터 잊고 있던 업무 스트레스가 은근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 전혀 다른 '일요병(病)'이 찾아 왔다. 그건 도심이나 전원생활자 모두가 겪는 일상의 풍경, 누구나 겪는 공통된 병리인 것 같다.

일요일 오후 늦은 시간에는 휴대폰에서 쉴새없이 알람이 터진다. 여기저기서 주말을 보낸 지인들이 전해오는 일상 속 대화들이다. 나는 몇개의 대화방이 있다. 형제와 친구들이다. 대개 그들은 주말여행에서부터 자녀들의 혼사는 물론 사소한 음식에 대해 사진과 영상까지 올린다. 아예 즐긴다. 감사 인사, 우정을 나누는 메시지, 친구들이 주고받는 대화 등 많은 얘기가 전해지는 시간이 대개 일요일 오후다. 어떤 날은 평일보다 더 소란스럽다.

오늘도 한 친구가 아들 혼사에 대해 감사메시지를 전했다. 어제 대전에서 친구의 아들이 결혼했다. 서울에서는 친구 한명이 대표로 참여했고 그 친구를 통해 축의금을 전했다. 바로 엊그제 저녁에는 결혼식 장면이 담긴 영상과 사진이 날아오고 참석치 못한 친구들의 축하인사가 전해졌다. 다음날 오후 무렵엔 혼주인 친구가 감사를 전하고서 하나의 이벤트가 정리됐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즐기지 않는 나도 혼주에게 축하인사를 하거나 친구들에게 안부가 담긴 메시지를 남겼다.

이런 주말 풍경으로 얼굴을 대하지 않고도 친구의 사정을 옛날보다 더 많이 알게 된다. 한동안 페이스북 등 SNS를 즐기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피로감을 느꼈다. 많은 이들이 셀카를 즐기고 SNS의 담벼락에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올리는 일은 휴대폰이 나온 이후 줄어든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셀카가 집중되는 시간이 일요일 오후다. 메시지마다 응답을 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은근히 어깨를 짓누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무심코 '좋아요'를 누르는 것 처럼 '봤다'는 표시로 관심을 나타낸다. 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요병'이다.

이것이 내 삶이 디지털이란 거대한 방안에 갇혀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내 삶이 드넓은 세계와 연결돼 있으며 확장돼 있다는 증거인가. 온라인으로 접속돼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인터넷 과잉 즉, 새로운 질서에 대해 나는 비관론자에 속한다. 직접 만나서 안부를 전하고 대화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예전 방식에 그리움이 있다.

일요일 저녁이면 친구들의 시시콜콜한 잡담까지 다 듣는 것 같다. 예전보다 더 만나지 않으면서도 더 많이 안다. 친구들에 관한 일이니 피곤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런 과잉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돼 있다. 그 부피는 측정 불가능하다. '디지털세상에 어느만큼 대응해줘야 되는커야'.

나는 내 생애주기에서 라디오, 텔레비젼을 만났고 그 다음으로 위성과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을 만났다. 이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로 삶이 옮겨왔다. 그렇다고 디지털 유목민으로 겹겹이 연결된 삶을 경험한다는 것이 쉽게 납득되지는 않는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질서 혹은 문화가 온전히 정들지는 않았다. 그저 현실을 받아들일 뿐이다. 분명 내 삶의 공간은 도심 외곽이지만 디지털 세상은 여전히 북적인다. 그건 내가 그곳에 접속하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여기서 나는 반문한다. '혹시 거대한 디지털이라는 식민지에 살아가는 건 아닌가'라고. 지금 내가 대면한 세상과 만나고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일요일이 저물고 있다. 예전에 가졌던 월요병을 다시 되뇌어 볼 여유도 없다. 그건 아예 사라졌다. SNS가 만든 연결 덕분에 더 넓은 세계에 갇혀 쩔쩔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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