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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우석훈의 문화경제시대] 드골 대통령, 앙드레 말로 장관… 프랑스는 보수가 문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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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보수, ‘문화 복지’ 개념 제시하며 적극적 문화 진흥 정책 펴

우린 보수도 진보도 문화를 주변부 취급… 아직 ‘문화 경제’ 황무지

K팝·영화·드라마 일 원하는 청년들과 위기의 문화계 위한 고민을

문화 경제라는 단어는 유학 시절 처음 들었다. 당시 우리나라엔 그런 개념 자체가 소개되어 있지 않아서 정말 신기했다. 대학원에서 사용하던 연극경제학 교재를 번역하면서 생소한 분야를 처음 접했다. 아마 내가 생태경제학 쪽으로 박사 논문을 쓰기로 결정하지 않았으면 문화경제학 쪽으로 썼을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리고 정부의 개입이 강하다는 점에서 두 분야의 기본은 같다. 그 시절 문화 경제에서 가장 큰 이슈는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이데올로기적인 간섭을 어떻게 덜 받을 것인가, 시장을 키우면서도 상업주의의 폐해에서 예술가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거였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기존 상품 패러다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야들이 점점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즉각적으로 가격을 매기기도 쉽지 않다. 공산품 위주로 형성되던 실물경제가 디지털 경제로 전환되면서 중앙은행과 암호 화폐의 관계가 이제 경제에서 정치로 넘어가는 중이다. 문화의 가치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문화 경제는 다른 ‘보이지 않는 것’의 경제보다 덜 부각되고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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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문화는 우리의 국시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드골 장군이 대통령이 되면서 문화를 강조했다. 1958년 처음으로 문화부를 만들었고, 오랫동안 문제적 작가였던 앙드레 말로가 초대 장관을 맡았다. 그 시절 ‘문화 복지’라는 매우 독특한 개념을 프랑스 보수들이 제시했다. 우리는 문화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복지가 필요하다는 것 정도로 이해하였지만, 실제로는 온 국민이 누릴 수 있는 문화 향유권 같은 개념이다. 프랑스 보수는 정부가 문화 정책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할리우드와 브로드웨이로 대표되는 강력한 미국의 문화 상품 앞에서 프랑스 문화를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한국에서 문화 분야는 아직 경제라는 개념이 덜 정착되어 있는 것 같다. 여전히 주변부에 있지만 그래도 진보에서는 뭔가 족적이 남는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영화에 창투사가 투자할 수 있게 투자 여건을 정비한 것이 한국 영화에 결정적 장면 같은 것으로 남는다. 그 전에는 ‘한국 영화’라는 말도 쓰지 않고 ‘방화’라고 불렀다. 영화 ‘기생충’의 성과가 나올 수 있게 투자 여건을 정비하고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선망 같은 나름의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 출발점을 형성한 것 아닌가?

진보 진영에서도 문화 경제는 여전히 주변부에 있고, 유명한 스타를 대선 캠프에 모셔서 현안 정리하면 되는 것 정도로 이해한다. 김대중 대통령을 제외하면 문화 경제를 국민 경제의 핵심 축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별로 없다. 문재인 정부는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진영에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이전 보수 정부의 아픔이 너무 강하게 남아있다. 진보 진영이 청년들에게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비난받는다면, 보수 진영은 ‘밥그릇 걷어차기’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보수 진영에 문화 경제란 무엇인가? 그리고 2022년 대선을 맞아 어떤 시각을 제시할 것인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비록 춥고 배고픈 일자리라도 많은 한국 청년은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고,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고, 영화나 드라마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하며, 사회 체육 지도자가 되고 싶어한다. 중소기업이나 공장에 취업하라면 질색하는 청년들도 그보다 더 열악한 비정규직 작가나 영화 스탭은 기꺼이 되려고 한다. 문화 경제에는 청년의 꿈이 있다. 그래서 문화 경제가 미래 경제라고 생각한다. 미래 세대가 하고 싶어하는 것, 그런 매력이 있다. 나라면? 어설프게 이것저것 다 합쳐놓은 현재의 문체부에서 관광 분야를 독립시키고 문화부를 제대로 정비하는 일부터 하겠다.

뭐라도 좋다. 문화 경제는 이런 것이다, 이런 일을 하겠다는 보수의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감시와 처벌’이 아닌 ‘청년과 경제’ 같은 키워드가 보수에게도 절실하지 않은가? 코로나 한가운데서 한국의 많은 문화 분야는 소외와 외면 속에서 고사 직전에 있다. 보수가 문화 경제에 대해 답할 것이라면 지금 해야 한다.

[우석훈 성결대 교수·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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