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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이슈 미얀마 민주화 시위

국제사회가 힘 못쓰자 무장투쟁으로 기우는 ‘미얀마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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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 쿠데타 100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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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화 시위대가 10일 만달레이의 한 거리에서 군사 쿠데타 반대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11일로 쿠데타 발생 100일을 맞은 미얀마에서는 시민들의 저항과 군부의 무차별 진압이 계속되면서 내전 발발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만달레이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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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망자 수 780명·체포 3826명…경제·산업 ‘올스톱’
유엔, 자제 성명 발표뿐…시민들 소수민족 참여 연방군 논의

“미얀마는 국가 실패, 국가 붕괴의 위기에 처해 있다.” 국제위기그룹의 미얀마 선임 자문위원 리처드 호시는 지난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군부 쿠데타 이후 미얀마의 상황을 이같이 진단했다.

11일로 쿠데타 100일을 맞는 미얀마에서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석 달 넘게 군경에 의한 민간인 사망과 체포가 반복되고 있다. 경제는 멈췄고, 이미 시민 수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했다. 미얀마가 국가 붕괴로 치닫는 증거들을 지켜보면서도 국제사회는 거의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미얀마 시민들은 이제 반군부 무장투쟁으로 쏠리고 있다. 전면전으로 번진다면 어느 쪽이 승리하든 미얀마에는 더 많은 피가 흐를 수밖에 없다.

10일 미얀마 정치범지원협의회(AAPP)는 9일까지 군경에 희생된 민간인 수가 78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군경에 체포된 사람만 3826명으로 집계됐다. 이날에도 사가잉주에서 활동하던 시인 껫 띠(사진) 등 4명이 사망자 명단에 추가됐다. 그는 지난 8일 밤 아내와 함께 군경에게 붙잡혀 심문을 받았다. 그의 아내는 로이터통신에 “그는 돌아오지 않고, 시신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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껫 띠는 군부 쿠데타 이후 몇 편의 시를 썼다. 쿠데타 발생 이후 2주가 지나고 첫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을 무렵에 그는 “나는 영웅이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순교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썼다. 이후 군부가 조준 사격을 벌이는 등 하루에만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그는 “그들은 머리를 쏜다/ 혁명은 심장에 있다/ 그들은 그것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최근에 남긴 시에서 “나의 사람들이 총에 맞는데 나는 시만 던질 수 있다/ 목소리가 충분하지 않다고 확신한다면/ 총을 신중하게 선택해야만 한다”고 썼다.

쿠데타 이후 정부가 사실상 기능을 정지하면서 미얀마인들의 일상도 달라졌다. 의료기관은 물론 공공기관, 은행, 철도, 섬유 등 주요 산업 노동자들은 업무를 거부했다. 당장 코로나19 신규 확진자조차 제대로 보고되지 않고 있다.

경제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 6일 미얀마 소재 10개국 상공회의소가 현지 활동 기업 372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인 이상을 고용하는 기업 3곳 중 1곳이 올해 노동자 절반 이상을 해고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미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하는 의류산업이 조업을 멈추면서 많은 일자리가 사라졌다.

미얀마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6%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세계은행은 올해 미얀마의 국내총생산(GDP)이 10%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은 2022년까지 코로나19와 쿠데타의 영향으로 미얀마 인구의 48%인 2500만명이 절대빈곤층으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얀마가 국가 실패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국제사회는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는 미얀마 사태를 여러 차례 논의하고도 ‘폭력 자제’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는 데 그쳤다. 국제사회 개입이 ‘내정간섭’이라는 중국과 러시아 등의 반발이 영향을 미쳤다. 장쥔 중국 유엔대사는 지난 3일에도 “우리는 제재를 가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등 주요 서방국가들이 군부의 자금줄을 옥죄는 제재를 내놓고 있지만, 오랜 기간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던 군부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고 있다. 구원투수로 나선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노력도 현재까지는 미얀마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다. 군부는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폭력 종식’ 등 5개 항에 합의했지만, 이튿날부터 미얀마에서는 민간인 사망이 이어졌다. 아세안은 다음주 사무총장 등으로 구성된 특사단을 미얀마에 파견하기로 했다.

국제사회 개입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미얀마인들은 반정부 무장투쟁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미얀마에는 지난 60여년간 국경지역에서 자치권을 요구하며 무장투쟁을 지속해온 소수민족 무장단체가 20여개 존재한다. 이들 중 일부는 쿠데타 이후 민간인 사망이 계속되자 군부와 무력충돌을 거듭하고 있다. 민주진영의 임시정부 격인 국민통합정부는 소수민족들이 참여하는 연방군 창설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버마인이 인구의 약 70%를 차지하는 미얀마 시민들이 사상 처음으로 카렌민족연합 등 소수민족 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하는 등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연방군 창설 논의조차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 소수민족은 내부적으로 쿠데타 정부 찬반을 두고 분열돼 있거나 다른 소수민족과 갈등을 겪은 역사가 있다. 외교전문매체 더 디플로맷은 “카친독립군과 카렌민주연합은 국민통합정부를 지지하는 듯 보이나 샨주복원위원회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소수민족들 간 세력 규합이 이뤄져 전면전으로 치닫는다면 더 큰 혼란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무장관은 CNBC에 “전국적인 대화와 화해 없이는 미얀마에서 어떤 진전도 보지 못할 것”이라며 “실제 잠재적인 내전의 징후가 있다”고 했다.

이효상 기자 h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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