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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혼돈의 가상화폐

[단독]"비트코인 사면 890% 복리 이자 준다"…닷새만에 먹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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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직장인 A씨는 이달 초 유튜브에서 ‘150일 만에 1억 버는 법’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시청했다. 벤츠G클래스를 몰고 나타난 한 젊은 여성이 잔고 25억원의 통장을 인증하는 내용이었다. 이 여성 유튜버는 “1000만원을 넣으면 890%의 복리 효과로 154일 만에 1억원을 만들 수 있다”며 한 코인거래소를 홍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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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튜버가 1000만원 어치의 비트코인을 사면 143일 만에 1억으로 불릴 수 있다며 군소 거래소를 홍보하고 있다. [유튜브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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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상을 본 A씨는 지난 5일 500만원을 해당 코인거래소 계좌로 입금한 뒤 ‘이자’가 붙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데서 생겼다. 원금 손실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투자금 전액에 대한 출금을 신청했지만 “업무량 증가로 출금이 지연되고 있다”는 통보만 받았다.

A씨는 10일 오전 “꼭두새벽부터 10시간째 돈이 들어왔는지 은행 계좌만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오후 3시 이후로는 아예 거래소가 먹통이 됐다”며 “돈을 돌려받을 길이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만 해도 해당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이자를 준다고 홍보하는 유튜버들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말했다.



펀딩비가 복리 이자?…도 넘은 코인 유튜브



최근 유튜브에서는 비트코인을 사면 “8시간마다 적금처럼 투자금의 0.5%를 이자로 준다”고 홍보하는 유튜브 영상이 인기다. ‘비트코인 이자’를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일부 동영상의 조회 수는 155만회에 육박한다. 대부분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군소 코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1000만원 어치를 사면 150일 후 원금이 1억으로 불어난다고 홍보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취재 결과 유튜버들이 언급한 ‘비트코인 이자’는 불법 소지가 있는 비트코인 선물·마진 거래에서 나오는 ‘펀딩비’로 드러났다. 비트코인 선물 거래는 비트코인의 미래 시세를 예측해 예측이 적중하면 수익을 얻는 구조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예측하는 쪽(롱포지션)과 하락을 예측하는 쪽(숏포지션)의 비율을 맞추기 위해 두 포지션 중 우세한 쪽이 반대쪽에 돈(펀딩비)를 준다.

그런데 일부 유튜버들이 이 펀딩비를 ‘이자’라고 부르며 안전한 투자처인 양 호도하고 있다. 이들이 홍보하는 내용과 달리 만약 비트코인 가격 하락을 예측한 투자자 수가 적어 펀딩비를 받았는데,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면 원금이 깎인다. 게다가 투자자 간에 주고받는 펀딩비를 암호화폐 거래소가 직접 지급하며 투자자를 유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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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튜버가 ″비트코인 1000만원 어치를 산 후 이자를 받아 25억의 자산가가 됐다″며 고급 승용차를 자랑하고 있다. [유튜브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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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비트코인 이자'를 앞세워 군소 암호화폐 거래소를 홍보하는 일부 유튜버들이 선물거래 자체의 위험성을 설명하지 않는 데 있다. 선물 거래는 투자자의 시세 예측이 틀리면 원금을 모두 잃을 수 있어 고위험 투자처로 꼽힌다.

설사 예측이 맞아 수익을 올리더라도 거래소가 투자자들의 돈을 돌려주지 않은 채 ‘먹튀 폐업’할 가능성도 있다. 1금융권과 연동된 실명 계좌를 쓰는 4대 암호 화폐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에서는 선물 거래가 아예 불가능하다.

김한규 변호사는 “거래 금액을 키우기 위해서 초반에는 정상적으로 ‘이자’ 명목의 수익을 지급하면서 투자자를 끌어모으다 돌연 폐업하는 것이 유사수신업체들의 전형적 수법”이라며 “진짜 이자를 받았다는 다른 투자자들의 말만 믿고 정상적인 거래소라고 판단해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초반에 이자 준다고 정상 거래소 아냐”



현행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은 인·허가를 받지 않은 업체가 불특정 다수로부터 출자금을 받은 뒤 이자 지급을 약속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박정만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센터장(변호사)은 “코인거래소가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원화(금전) 입금을 받고 이자를 약정했다면 유사수신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 기관이 아닌 곳에서 이자 지급을 약속하는 ‘유사수신’은 암호화폐 관련 범죄 유형 중 가장 발생 빈도가 높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이 국가수사본부에서 제출받은 암호화폐 관련 범죄 행위 검거 현황에 따르면 암호화폐 관련 유사수신·다단계 범죄 검거 건수는 2018년 61건에서 지난해 218건으로 3배 늘었다.

지난해 발생한 암호화폐 관련 범죄 유형 중에서도 유사수신 발생 비율(65%)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구매대행 사기(25%)와 거래소 불법 행위(9%)가 그 뒤를 이었다.

박완수 의원은 “암호화폐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에 금융 상품과 달리 피해 구제가 어렵다”며 “비트코인을 사면 이자를 준다며 투자자들을 현혹하거나 계좌주 명의를 바꿔가며 여러 개의 계좌번호로 입금을 유도하는 거래소를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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