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물러가라”, “전○○ 팟쇼”.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보고한 계엄군 문건에는 이처럼 가려진 한 사람의 이름이 여러 곳에 등장한다. 당시 계엄군은 광주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해 시민들이 외치는 구호나 요구사항을 상부에 보고했다. 구호에 등장하는 최규하 당시 대통령 등의 이름은 모두 실명으로 적혀 있지만 유일하게 익명 처리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전직대통령 전두환씨(90)다. 5·18 당시 국군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 서리였던 전씨가 이미 함부로 군 문건에 이름을 적지도, 입에 올리지도 못할 정도의 ‘최고실력자’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10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5·18 당시 계엄군이 광주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작성해 보고한 여러 문건에서 전씨의 이름만 익명으로 처리됐다. 당시 계엄군 최고 수뇌부는 보안사령부나 계엄사령부 치안처 등을 통해 광주의 상황을 보고 받았다.
전씨가 사령관이었던 보안사령부는 관련 보고에서 전씨의 이름을 대부분 제대로 표기하지 않았다. 보안사의 5월20일자 ‘광주 시내 시외 동향’ 상황보고에서는 “18:20(오후 6시20분) 현재 금남로 3가 한국은행 앞에 1000명으로 증가한 시민 학생이 계엄군과 대치하면서 ‘계엄군 물러가라’ ‘전○○, 신현확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 중” 이라고 쓰여 있다. 전씨 이름은 익명 처리됐지만 당시 신현확 국무총리의 이름은 그대로 적혔다.
1980년 5·18당시 보안사령부의 상황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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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23일 전남 목포 상황을 보고한 당시 505보안대의 문건에는 시민들이 외친 구호가 적혀 있다. 이 문건에는 최규하 대통령에 대해서는 ‘최규하 대통령 물려가라’라고 시민들이 외친 구호를 그대로 적었다. 하지만 전씨에 대해서는 ‘전○○ 물러가라’로 역시 익명 처리했다. 전씨의 이름을 알아 볼 수 있는 ‘전○○’으로 보고된 문건에 볼펜 두 줄로 그어 이를 삭제한 것도 있다.
1980년 5·18당시 505보안대의 일일상황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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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계엄사령부도 전씨의 이름을 문건에 제대로 적지 않았다. 계엄사령부 치안처가 작성한 5월22일 치안상황보고 ‘대표자 회의’ 제목의 문건에는 당시 대학생 대표와 전남 부지사의 회의 내용 중 학생 요구 사항이 적혀있다. ‘발포명령 철회’, ‘인명피해 보상’, ‘구속학생 석방’ 등 6가지 요구사항이 적혀있는데 ‘○○○ 물러가라, 계엄해제’라고 기록됐다. 같은 날 계엄사 치안처의 ‘광주지역 동향’ 문건에도 서울에서 발견된 전단의 내용을 기록하면서 ‘○○○ 팟쇼’ 라고 기록했다. 두 문건의 ○○○은 모두 ‘전두환’이다.
1980년 5·18당시 계엄사령부 치안처의 치안사항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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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당시 보안사령부의 상황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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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교수는 “최규하 대통령이나 (신현확)국무총리의 이름은 적으면서 전두환의 이름만 제대로 적지 않은 것은 당시 군 내부에서 이미 전두환을 최고 통수권자로 인식하고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5·18당시 최고실권자가 누구였는지를 전두환 이름을 적지 못한 군 문건들이 보여주고 있다”면서 “5·18과 아무상관이 없다는 전두환의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말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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