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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만물상] 명동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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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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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이른 봄 명동의 대폿집에서 막걸리 마시던 시인 박인환이 종이에 글을 끄적거렸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옆에 있던 이진섭이 곡을 붙였다. 테너 임만섭이 열창하자 길 가던 행인들이 술집 앞으로 모여들었다. 나중에 가수 박인희가 노래해 히트한 ‘세월이 가면’은 이렇게 탄생해 ‘명동 샹송’ ‘명동 엘레지’로 통했다. 명동의 낭만 시대였다.

▶1929년 일본 미쓰코시 백화점이 서울 출장소를 지점으로 승격했다. 이듬해 10월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의 백화점 건물을 충무로에 완성했다. 지금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이다. 4층 커피숍은 모닝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주인공이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고 되뇌는 이상의 단편소설 ‘날개’ 결말에 등장하는 장소가 미쓰코시 백화점 옥상이다. 1920년대부터 상업지구가 된 명동과 충무로 일대는 부와 욕망이 집결하는 상권 그 이상이었다. 문화 예술의 중심이었다.

▶'예술가들은 돈을 귀찮게 생각한다/예술가들은 오로지 사랑에 산다/예술가들의 사랑에선 커피 냄새가 난다.’(조병화의 시 ‘동방살롱) 전흔이 가시지 않은 1955년, 청년 사업가가 명동에 문화 예술인을 위한 ‘동방문화회관’을 열었다. 차 한잔 시켜 놓고 하루 종일 죽치는 가난한 문화 예술인을 위해 1층엔 다방 ‘동방살롱’을 운영했다. 전후 복구가 이뤄지면서 명동에 고층 빌딩이 들어섰고 금융기관 본사가 자리 잡았다.

▶강남 개발로 명동의 독보적 지위도 흔들렸다. 여의도에 금융 중심지 지위도 내줬다. 그럼에도 전국에서 제일 땅값 비싼 곳은 여전히 명동이다. 화장품 브랜드 네이처리퍼블릭의 명동 매장 부지가 18년째 공시지가 전국 1위다. 1㎡당 공시지가가 2억650만원으로 평당(3.3㎡) 6억8000만원도 넘는 금싸라기 땅이다. 명동의 활력이 되살아난 건 10여 년 전부터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불황이 닥쳤는데 오히려 명동은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의 특수를 누렸다. 내국인 대신 일본, 중국 관광객이 몰려 명동은 K패션, K뷰티 상품을 파는 관광 코스가 됐다.

▶코로나 확산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자 명동이 특히 치명타를 입었다. 임대료 비싼 1층 상가 공실률이 60%쯤 된다고 한다. 명동(明洞)이 아니라 암동(暗洞)이 됐다. 관광객이 다시 찾아오면 어느 정도 매출은 회복되겠지만 화장품 싹쓸이하는 중국 관광객에게만 의존해서는 ’100년 상권’ 명동의 명성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일 듯싶다.

[강경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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