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구글 투명성 보고서는 우리나라 정부가 행정력을 동원해 삭제하는 인터넷 콘텐츠 규모가 선진국을 크게 앞지르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한국 정부가 구글에 콘텐츠 삭제를 요청한 건수는 2397건이었다. 주요 7개국(G7)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작게는 3배, 크게는 12배까지 차이가 났다. 개별 요청 건에 포함된 콘텐츠 항목으로 보면 수치는 더욱 폭증한다. 우리 정부가 구글에 삭제를 요청한 콘텐츠 개수는 2020년 한 해에만 5만4330건이었다. 미국(9482건), 일본(1070건), 독일(1941건), 영국(829건), 프랑스(5475건)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주요 사례로 보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성매매를 조장하는 것으로 판단한 블로그 6개를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5·18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북한군 개입설 등 가짜뉴스를 유포 중인 유튜브 영상 100개에 대해 삭제를 요청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동의를 얻지 않은 노골적인 이미지 545건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39개의 명예훼손성 블로그 글 50건의 삭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마저도 35%는 구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65%만 삭제됐다. 콘텐츠를 찾을 수 없다(1만3398건), 콘텐츠가 이미 삭제됐다(1135건),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821건)는 이유로 삭제되지 않은 일도 많다. 그만큼 정부가 삭제 요청을 남발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유독 한국에서만 콘텐츠 삭제 요청이 도드라지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행정기관을 통한 사적구제 관련 제도가 발달해 있기 때문으로 진단했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 2에 규정한 '임시조치'가 대표적이다. 임시조치는 특정 게시글로 자신의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으면 해당 게시글을 30일 동안 무조건 차단하도록 돼 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임시조치로 연간 45만건, 일평균 1250건이 넘는 인터넷 게시글이 차단되는데, 대부분 공적 인물이나 업체 대표에 따른 요청"이라고 말했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임시조치가 사실상 삭제 기능과 같은데 정치인이나 기업에 대한 비판과 합리적 문제제기조차 과도하게 차단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는 이처럼 소송을 통한 피해구제보다 국가를 통한 절차적 피해구제 수단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제도를 통한 심의에서 '불법정보'나 '유해정보'라는 표현이 지나치게 광범위한 것도 문제로 꼽혔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불법정보에 포함되는 항목이 통신시스템 방해, 음란정보, 비방, 공포심 등으로 너무 광범위하고 주관적인 판단의 여지가 크다"며 "혐오표현 등 유해정보도 다른 나라는 포털 등을 통한 자율규제 영역인 데 반해 한국은 행정적, 형벌적 집행의 법적 규제 항목으로 두고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정지요청이나 처분이 내려지는 게 일반적"이라고 진단했다. 황 교수는 "사실적시 명예훼손 등도 우리나라에만 있다. 음란정보라는 기준도 너무 포괄적으로 돼 있어서 '콘돔' 등은 청소년이 알아야 할 정보인데도 음란정보로 분류되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홍성용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