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찾기 위해 나섰다가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바뀔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제는 담담하게 사연을 이야기하게 된 강화옥 씨(64)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인생 역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눈물이 시작되면 아침부터 밤늦게 잠들기 전까지 계속 울기만 할 정도로 우울증이 심했고, 탈북 과정에서 겪은 일 때문에 트라우마도 있었기 때문이다.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탈북민) 중 드물게 북에서 쓰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강씨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바로 딸을 찾는 일이다. 우리 나이로 35세가 된 딸은 중국 어딘가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 게 강씨의 추측이다. 중국으로 넘어간 사실은 있지만 그 뒷일을 모른다는 이야기다. 강씨는 "혹여 딸이 남한에 입국하는 데 성공하면 엄마를 찾을 수 있으니 이름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코로나19로 북한이 사실상 국경을 폐쇄하기 전엔 매년 1000명 이상 탈북민이 국내로 들어왔다. 이들 중 가족이 온전히 다 함께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정이 해체되는 것이다. 게다가 언제 다시 가족을 만나게 될지 기약이 없고, 심지어 살아 있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안도하는 형편이다.
가정의 해체는 이들이 서로 의지할 곳이 없어 자살을 시도하게 하거나, 질병 등으로 어려움이 닥쳤을 때 당장 간병과 같은 대응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남북하나재단이 올해 초 내놓은 '2020 북한이탈주민 사회통합조사'에 따르면 전체 탈북민 중 자살 충동을 느낀 이들이 13%(전체 국민은 5.2%)나 됐는데, 이 중 '외로움·고독'(16.8%), '가정 불화'(10.6%)를 원인으로 꼽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탈북 후 가정의 울타리가 없을 때 외로움이 크게 와닿게 된다는 분석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2020년까지 입국한 탈북민은 3만3752명에 달한다.
탈북민 중에는 가족과 생이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강씨도 같은 사례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강씨는 북에서 간호장교로 8년을 복무하고 인민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딸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들도 있었다. 그런데 오징어 잡이를 나갔던 아들과 사위가 풍랑에 휩쓸려 불귀의 객이 됐다. 한순간 남편과 오빠를 잃은 강씨의 딸이 갑자기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브로커를 통해 중국으로 떠났다는 것만 확인됐다.
노모와 둘이 살게 된 강씨도 딸을 찾기 위해 무작정 중국으로 갔다. 그러나 딸을 찾을 수 없었고, 혹시 남한으로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남한으로 들어오는 길을 찾게 됐다. 강씨의 가슴에 맺힌 가장 큰 한은 탈북 도중 붙잡혀 북송된 노모다. 강씨는 "연길에서 붙잡혀 도로 북송된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저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가족을 잃고 낯선 환경에 던져진 탈북민을 돕는 것은 탈북민단체들이다. '새롭고하나된조국을위한모임(새조위)'은 탈북민의 심리 치유와 교육, 의료지원센터를 통한 의료 상담, 정착을 위한 역량 강화 교육 등을 수행한다. 설립 연도인 1988년부터 작년까지 새조위를 통해 의료비 및 의료 상담을 지원 받은 탈북민은 초진 인원만 1만2030명이다. 새조위 실장을 맡고 있는 강씨는 "남한에 사는 탈북민 중 3분의 1은 우리의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새조위에서는 가족 성원이 온전하지 않은 탈북민, 특히 노인을 대상으로 한 '시니어 탈북민의 커뮤니티 구축 사업'을 행정안전부와 함께 진행하고 있다. 고독과 우울, 빈곤, 질병에 시달리는 고령의 탈북민들이 서로 의지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목표다. 강씨는 "10명 정도로 조를 짜서 같이 점심도 먹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해주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부가 지원 예산을 사실상 끊으면서 일부 탈북민단체는 운영이 어려워졌다. 탈북민 지원 단체인 숭의동지회 관계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독거노인 취약계층 지원 사업에 8000만원을 지원했는데, 올해는 6000만원으로 삭감됐다"고 말했다. 탈북민단체 관계자들은 정부 성향에 맞지 않는 단체들이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고 증언한다. 유석상 새조위 사업부장은 "각 부처에서 지원금을 주는데 정권의 시책에 따라 지원하는 단체가 달라진다"며 "가령 정부 시책에 반하는 인터뷰나 사업을 하면 감점 요인이 된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남한에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지 못한 일부 탈북민에게 '가정의 달'은 낯설다. 강씨는 "딸보다 조금 어린 아이의 정착을 도와주다가 내가 수양딸 삼아 가족처럼 지내고 있는데, 북에서 온 동포들도 남한에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희석 기자 /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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