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에서 양진호 회장을 모티브 삼은 박양진을 연기한 백현진(왼쪽)과 <빈센조>에서 금가프라자 상인 래리강을 연기한 김설진. 방송화면 갈무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사람 알고 보니… 헉!”
포털에서 클릭을 부르는 단골 ‘낚시성’ 제목이다. 그런데 이 표현이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먼저, 한 남자.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드라마 <모범택시>(SBS)에서 ‘웹하드 업체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을 모티브 삼은 캐릭터 ‘박양진’을 찰지게 연기해 “대체 누구냐?”는 궁금증을 낳았다. 또 다른 남자. 최근 종영한 드라마 <빈센조>(tvN)에서 좀비 흉내에 현대무용까지 선보이는 팔색조 매력으로 시청자에게 눈도장 제대로 찍었다.
‘너희 대체 이름이 뭐니?’ 원래 알던 사람은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며 놀라고, 모르던 사람은 “어디 있다 이제 나왔냐”며 놀라는, 두 남자의 정체를 <한겨레>가 제대로 파헤쳐봤다. 지난 3일 두 남자를 각각 전화로 인터뷰했다. 특히 <모범택시> 이후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는데도 모두 거절했다는 이 남자, “알고 보니… 헉!”
백현진. 에스더블유엠피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모범택시> 백현진 “내가 왜 한다 그랬지?”
“사실 전 이 드라마 하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모범택시>에서 박양진을 연기한 배우 백현진이 말했다. 박양진이 모티브 삼은 양진호 회장은 자신을 비난하는 댓글을 쓴 전 직원을 폭행하는 영상이 공개되면서 사회적인 공분을 일으켰다. 이후 새로운 혐의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아무리 연기라지만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을 나도 계속 인지하게 되잖아요. 거기서부터 너무 힘들더라고요. 몸이 아플 정도로. ‘내가 왜 한다 그랬지?’ 그 생각을 계속했어요.” 사건이 워낙 엽기적인데다 그가 극에 몰입해 최선의 연기를 선보인 탓일지 모른다. 이 에피소드는 5~8화에 걸쳐 나온다. 전동킥보드를 타고 처음 등장하는 순간부터 시청자들은 눈이 동그래졌다. “진짜 양 회장이 나온 줄 알았다”고들 했다. 영상을 보다가 졸았다는 이유로 상사한테 혼난 신입사원에게 그가 “동영상 보면서 졸 수도 있지. 뭘 그런 걸 갖고 그래”라는 첫 대사를 내뱉자 시청자들은 입까지 벌렸다. 생김새에 말투까지 뉴스에서 보던 딱 그 양진호였다. 분명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캐릭터 분석을 거듭했을 것이다.
“사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석을 안 했어요. 그 사건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었죠.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당시엔 영상이나 뉴스를 꼼꼼하게 보지 않았어요. 박양진을 연기하기로 결정한 이후 사진·동영상을 봤는데 도저히 못 보겠어서 중단했어요. 너무 끔찍하고 마음이 안 좋았어요. 그냥 제가 알아서 하기로 했어요. 대신 앞머리만 조금 연출했어요. 저도 탈모가 진행 중인 사람이라, 사진 한장 갖고 동네 미용실 가서 재현했죠. 안경은 분장팀이 권한 걸 썼고요.”
<모범택시>에서 양진호 회장을 모티브 삼은 박양진을 연기한 백현진. 방송화면 갈무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는 “양진호 회장 재현을 목표로 하지 않고, 내가 맡은 인물이 배우가 아니라 실제 있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저 사람 대체 누구냐”는 누리꾼들의 찬사 어린 문의가 빗발친 캐릭터가 참으로 오랜만에 탄생했다. 단순히 닮아서만이 아니다. 연기로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런데 그는 이런 칭찬조차 혼란스러운 듯했다. “이런 역할을 잘한다는 게 뭘까라는 회의가 갑자기 들더라고요. 현장에서도 ‘너무 좋다. 잘한다. 방영되고 나면 반응이 좋을 것’이라고들 하시는데, 이런 악인 연기를 잘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재미가 없어졌다고나 할까요.”
악인이 되어 악인의 마음을 이해하며 연기를 해야 하는 게 힘들었지만, 그는 시청자들의 반응과 사랑으로 치유된 듯했다. “이 사건을 몰랐던 분들이 드라마를 보고는 실제 사건을 찾아보시고, 이미 알았던 분들은 현재 진행 상황을 찾아보시더라고요. 여기까진 생각 못 했는데, 그 사건이 다시 환기되는 걸 보며 참여했던 배우로서 마음이 괜찮아졌어요.”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 <한겨레> 자료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알고 보니 배우·가수·화가·영화감독…
엽기적인 영상을 따라 하는 대신 “나만의 방식으로 알아서 하겠다”고 배포 두둑하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색깔과 매력을 지닌 ‘다중캐 백현진’이기 때문이다. 그의 연기 경력은 독립영화 포함해 20년 정도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김조하(이병헌) 친구 동수로 나와 이병헌의 즉흥대사를 되받아치는 재치로 주목받았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서는 악덕 상사로 나왔다. 단편영화 <디 엔드> <영원한 농담>을 연출한 감독이기도 하다.
백현진은 원래 가수다. 지금은 밴드 이날치와 영화음악감독으로 활약하는 장영규와 1997년 만든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가 ‘다중캐 백현진’의 시작이다. 파격적인 가사와 개성 넘치는 음악으로 인디음악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김지운 감독의 영화 <반칙왕>,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 곡이 사용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또한 틈틈이 전시회를 여는 화가다.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다녔다. 설치미술, 회화 등 다양하게 작업한다.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기도 했다.
화가 백현진. 김용린 작가 제공 |
올해에도 ‘다중캐 백현진’은 다방면으로 활동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브로커>에 최 형사로 출연하고, <비밀의 숲> 안길호 피디가 연출하는 드라마 <해피니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독립영화 <십개월> 등이 공개를 앞두고 있다. 모두 기대작이다. 그는 “<모범택시>로 배우 백현진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면, <십개월>을 보길 권한다”며 “완전히 다른 이미지다. 배우로서 다른 백현진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화가·가수 백현진도 바쁘다. 6월3일~7월3일 서울 삼청동 피케이엠(PKM)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개인전과 관련한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도 낸다. “전시에 대한 음악을 음반으로 만들어 들려줄 것”이라고 한다.
김설진. 본인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 <빈센조> 김설진, 무용가·안무가…“가슴 뛰는 건 다 해보고파”
지난 2일 끝난 <빈센조>는 김설진을 아낌없이 활용했다. 극 중에서 좀비 연기가 특기로 설정돼 드라마에 수시로 김설진의 좀비 연기가 등장했다. 빈센조(송중기)와 홍차영(전여빈)의 임무 수행을 돕는 과정에서 그는 고급 현대무용도 선보였다. 드라마를 위해 특별히 연습한 거 아니냐고? 자, 지금부터 몰랐던 이들을 위해 김설진의 ‘다중캐’를 공개한다. “알고 보니… 헉!”
<빈센조>에서 댄스학원을 운영하는 래리강을 연기한 김설진은 국내에서 알아주는 현대무용가다. “아휴 과찬이십니다.” 그는 2008년 벨기에의 피핑 톰 무용단에 입단했다. 피핑 톰 무용단은 현대무용의 성지인 벨기에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무용단이다. 한국에서 이름을 떨친 건 2015년께다. <엠넷>의 댄스 경연 프로그램 <댄싱9> 시즌2·3에서 우승한 것이 계기였다. 그는 안무가이기도 하다. 가수 이효리의 6집 음반 수록곡 ‘서울’의 안무를 맡으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도 나오는 등 ‘이효리의 춤선생’으로 유명해졌다. 현재 현대무용단 ‘무버’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이다.
현대무용가 김설진. 의정부음악극축제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최근에는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로 새로운 부캐도 장착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스위트홈>에서 괴물의 움직임을 연구하고 구상했다. 뇌가 잘린 연근 괴물은 직접 연기했다. “춤을 사랑하지만 그 안에 갇혀 있고 싶지는 않아요. 모든 건 다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한번 사는데, 두근거리는 건, 재미있는 건 다 해보고 싶어요.”
그가 2017년 <전체관람가>(JTBC)에서 이명세 감독의 단편영화 <그대 없이는 못 살아>를 통해 처음 연기에 도전한 것도 예술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의성어 가득한 표현, 기괴한 동작 등을 단번에 이해하고 표현해 호평받았다. 이후 출연 요청이 쏟아졌다. 그해 12월 <흑기사>(한국방송2)에 출연했고, 2019년 <아스달 연대기>(tvN) 등을 거쳐 <빈센조>에서 배우로서 자리매김했다. “지인들은 가지가지 한다고 놀리죠. 하하하.” 왜 배우까지 병행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사람 공부하는 게 재미있다. 배우는 움직임에 국한되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라고 답했다.
보디 무브먼트 컴포저 김설진. 넷플릭스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는 연극에도 도전한다. 오는 18일부터 8월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완벽한 타인>에 출연한다. “무용계 선생님들은 제가 연기하는 걸 우려하세요. 하지만 연기를 하면서도 지난해 무용 신작 7개 작품을 했어요. 춤추는 사람이 이슈화되면서 관객이 극장을 찾아준다면 그것도 긍정적인 효과잖아요. 요즘 부캐가 유행이던데, 제 가슴을 뛰게 하는 분야를 다 잘하고 싶어요.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그냥 한번 해볼까’가 아니다. 백현진도 김설진도, 그 모두에 진심이다. “알고 보니… 헉!”이란 표현이 이들에겐 공허하지 않은 이유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esc 기사 보기▶코로나19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