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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연극 리뷰] '해롤드와 모드', '팔순' 박정자가 건넨 먹먹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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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연극 `해롤드와 모드`에서 모드 역의 박정자(왼쪽)와 해롤드 역의 임준혁이 커다란 나무에 올라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 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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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한 잔을 부르는 연극이다. 19세 청년과 80세 할머니의 로맨스가 가당키나 했는데 연극을 본 뒤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받는 것보다 때론 이해받는 것이 더 절실한 법이니까.

극 중 19세 청년 해롤드는 유복한 집안의 외아들이다. 아버지를 여읜 그는 어머니의 틀에 박힌 잔소리 속에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가짜 자살 소동을 벌인다. 성당 장례식장에 가는 것도 취미다. 성당에서 바닥에 떨어진 땅콩을 찾고 있는 80세 노인 모드를 만난다. 첫 만남부터 좌충우돌 엉뚱한 매력을 뽐내던 모드는 도심 한복판에서 죽어가는 나무를 마음대로 뽑아와 성당 묘지에 심으려다 발각돼 해롤드와 함께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도망가는 와중에도 신부의 차를 훔치는 기지를 발휘한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도덕과 법의 테두리를 마음대로 뛰어넘는 모드는 전쟁 때 남편을 잃은 나치 수용소 생존자로 암시된다. 푸른 바다 위 상공을 가로지르는 한 마리 갈매기처럼 자유롭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초롱초롱 빛나는 별 같은 존재가 모드다. 그에 비해 해롤드는 내면에 온갖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진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더 젊고 생기 있고 도전적인 인물이 80세 노인인 것이 역설적이다. 해롤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삶을 이해하는 모드를 만나면서 제대로 숨을 쉬고 웃음을 찾게 된다. 급기야는 반지를 사서 프러포즈까지 계획한다.

팔순이 되는 해 기필코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 했던 배우 박정자를 위한 연극이다. 노년에도 그토록 맑고 고운 목소리에 또렷한 발음이 가능하다니 놀랍다. 리듬감 있는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중간중간 눈을 감고 싶어질 정도다. 장풍을 쏘는 귀여운 몸짓은 웃음을 자아낸다.

2003년 시작한 '해롤드와 모드'는 이번이 7번째다. 해롤드 역은 지금까지 이종혁, 김영민, 강하늘을 거치며 스타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외우고 싶은 명대사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삶의 유한성을 나타내는 동시에 고통과 즐거움도 한때의 감정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해. 이 두 가진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 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거야." 모드가 해롤드에게 감정 표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다독이면서 건넨 말이다.

모드는 모두 똑같아 보이는 꽃다발을 하나씩 살펴보며 이렇게 읊조린다. "어떤 건 작고 어떤 건 통통하지. 그리고 어떤 건 왼쪽으로, 어떤 건 오른쪽으로 자란단 말이야. 또 어떤 건 꽃잎조차 없는 것도 있어. 눈으로만 봐도 가지가지 다르거든. 나한텐 이것들이 꼭 사람처럼 보여. 사람은 저마다 달라. 과거에도 존재한 일이 없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아. 꼭 이 꽃처럼…."

중년·노년층 관객도 상당수 객석을 채우며 자유로운 팔순의 삶에 갈채를 보내고 있다. 서울 삼성역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이달 23일까지.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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