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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9 (금)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의원 왔는데 이사장 어딨나” 사실 아니다? 해명하려다 더 커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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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블랙박스]

조선일보

김수흥 의원 국감 질의


“(김영재 이사장) 입장문 봤죠? 제가 이렇게 당하고 있습니다.”

지난 6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김수흥 의원(익산갑)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 같이 밝혔다. 김 의원은 지난달 한국 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이하 진흥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사장이 도대체 누구를 만나러 갔기에 국회의원이 왔는데 부재중이냐”며 갑질과 막말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이 같은 갑질과 막말이 사실과 다르다는 취지였다.

김 의원이 언급한 입장문은 김영재 진흥원 이사장이 작성해 지난 5일 밤늦게 언론에 배포됐다. 김영재 이사장은 입장문에서 ‘최근 김수흥 의원님의 진흥원 방문과 관련해 마치 의원님이 갑질과 막말을 한 것처럼 보도되었으나 이는 명백한 오해였음을 밝힙니다. 이사장으로서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자 책임입니다’라고 적었다.

김수흥 의원은 이 입장문을 두고 “저 사람(김영재)이 얼마나 당황했으면 저렇게 (입장문을) 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막말 논란) 언론 보도 때문에 전국적으로 몹쓸 놈이 됐다”며 “김영재 이사장의 입장문 전문을 보도해 명예를 회복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김 의원과 통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진흥원 노조가 성명서를 냈다. 김영재 이사장이 노조의 뜻에 반해 일방적으로 김수흥 의원에게 사과했다는 것이다. 갑질과 막말 논란 이후 2주 동안 김수흥 의원과 김영재 이사장, 노조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국회의원 왔는데 이사장 어디에”

노조에 따르면 김수흥 의원은 지난달 23일 전북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에 있는 진흥원을 방문해 “이사장이 도대체 누구를 만나러 갔기에 국회의원이 왔는데 부재중이냐”고 말했다고 한다. 노조는 “김영재 이사장이 사전 업무 일정으로 방문 시간을 조정해 달라고 요청하였지만, 김수흥 의원이 마음대로 방문했고, 막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특정 직원을 앞에 두고 갑자기 ‘당신 낙하산이냐’는 근거 없는 발언으로 공개적인 망신을 주는 등 인격적인 모독을 이어갔다”며 “업무 보고가 진행되는 모든 사안에 대해 담당자 설명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진흥원 관계자들을 무능한 사람으로 몰았다”고 했다. 노조는 “‘오해가 있다'고 설명하려는 직원은 아예 발언을 금지함으로써 그 자리에선 그 누구도 국회의원이라는 권력 앞에서 해명할 기회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모멸감을 숨겨야 했다”고 밝혔다.

또 김 의원은 이날 국가식품클러스터 입주 기업 5곳을 방문했는데, 노조와 입주 기업 대표들은 “김 의원이 입주 기업을 작은 기업이라고 무시했다”며 “한 떡 가공 업체 대표에겐 ‘제품 수준 떨어진다’는 발언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노조의 사과 요구, 국회 보좌진 게시판에도 비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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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흥 의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비판하는 하는 댓글./여의도 옆 대나무숲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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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지난달 28일 김수흥 의원실에 성명서를 보내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노조는 ‘김수흥 의원은 익산시를 흥하게 하려는가. 망치려는가?’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타인의 명예와 자존심을 짓밟는 비인격적이고 오만한 익산 지역구 의원을 고발하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고 밝혔다.

노조는 “이렇게 작은 기관의 노조가 후폭풍을 두려워하면서도 성명서를 낸 것은 명예 회복을 위한 것”이라며 “노조가 낸 성명서 내용은 모두 입증 가능한 사실들이며, 김 의원은 도대체 어떤 부분들을 노조가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인지 알려주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국회의원 보좌진과 국회사무처 직원들의 익명 게시판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도 지난달 29일 김 의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는 “오늘(4월 29일) 갑질 논란으로 기사 대문짝만 하게 나신 ㄱ 의원 영감님. 예전부터 명성이 자자했다고 익히 들었습니다만, 사무처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사무처 직원들한테 나으리 존함 세 글자 말하면 다들 혀를 내두르지 않소”라고 적었다.

이 글이 올라온 날 갑질 논란으로 언론 보도가 나온 인물은 김수흥 의원이 유일하다. 김 의원은 당선 8개월 전까지 차관급인 국회사무처 사무차장을 지냈다.

◇김수흥 의원 “애정 어린 마음 담아 발언” 해명

노조 성명서에 대해 김 의원은 입장문을 내고 “최근 진흥원을 방문해 한 모든 공식 발언은 오직 익산시 발전을 위한 애정 어린 마음을 담은 것”이라며 “하지만 노조가 사실과 다른 왜곡을 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의원 측은 “의원실의 입장을 조율 중이다. 앞선 입장문에 밝힌 내용은 취소하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난달 29일 수정한 입장문을 다시 냈다. 그는 “국가식품클러스터 활성화는 익산 시민의 염원이며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현안이지만 당초 기대했던 성과와 비교해 매우 미약한 수준”이라며 “익산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진흥원을 방문했고, 1시간여 동안 직원들과 함께 열띤 토론에 시간을 할애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 의원은 “일부 방법에서 직원들과 상이한 의견과 대립이 있었지만 열띤 토론이었다”며 “하지만 나를 포함한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모든 과정에 임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김 의원은 “노조 측에서 언론에 발표한 성명에는 제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였다는 내용이 담겼다”며 “진흥원 직원을 비롯해 익산 시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린 것에 깊은 유감을 표하고, 진흥원 측에서 당일 토론을 녹음한 내용 전문을 언론과 시민들에게 공개해 달라. 부덕이 있다면 정중히 사과드리겠다”고 밝혔다.

◇ 노조 “이사장 독단적 사과, 굴욕적이다”

김 의원이 입장문을 발표하자, 노조와 김영재 이사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 3일 간담회에서 김영재 이사장은 “사태 수습을 위해 김 의원과 노조 사이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중재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영재 이사장은 지난 5일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태로 김수흥 의원님의 명예 및 이미지 실추, 상처를 안겨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의원님의 의지와 열정을 오해해 발생한 논란에 대해 익산 시민과 관계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김 이사장은 “김수흥 의원님은 익산에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대기업을 비롯한 중견기업 유치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으며,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며 앞으로 큰 성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앞으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김수흥 의원님과 함께 깊이 협력하고 노력할 것”이라고도 했다.

노조는 “굴욕적이다”고 했다. 김 이사장의 입장문엔 노조에 대한 사과나 명예회복 이야기는 없었고, 김 의원에 대한 사과와 김 의원의 치적만 나열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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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흥 의원을 비판하는 페이스북 댓글./김수흥 의원 페이스북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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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사과 약속 뒤집은 이사장, 외압 있었나?”

노조는 “김영재 이사장이 노조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입장문을 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지난 6일 다시 성명서를 내고 “당초 김영재 이사장은 김수흥 의원이 행한 모든 사실에 대해 인정 및 사과를 전제로 두고 사태 수습을 위한 중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런데 노조와 약속을 저버리고 일말의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입장문을 내놨다”고 밝혔다.

이어 “노조는 이사장의 중재로 빠른 명예 회복을 기대했지만, 노조의 명예회복은 안중에도 없이 오히려 김수흥 의원의 명예만을 걱정하는 입장문으로 다시 한번 상처와 모멸감을 안겼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불과 며칠 전 약속했던 것을 모두 내동댕이치고 사실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입장문을 낸 것은 명백히 노조를 기만하는 행위이며 어떤 외압이 있었는지 김영재 이사장은 반드시 밝혀주길 바란다”며 “노조는 외압에 절대 굴하지 않고 끝까지 김수흥 의원의 사죄를 받아내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고 했다.

[김정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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