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지난달 25일 새벽 반포 한강 둔치에서 실종된지 닷새째에 주검으로 발견된 대학생 고(故) 손정민군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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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의대생 손정민(22)씨 사망 사건은 숱한 ‘가짜뉴스’를 만들어 냈다. 풀려야할 의혹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온라인을 통해 사실과 다른 정보가 확대‧재생산됐다. 그 걷잡을 수 없는 확산에는 제 자식을 잃은 듯 안타까와하는 시민들의 염려, 진실을 밝히겠다는 정의감도 영향을 줬다. 게중엔 구독자를 늘리려는 유튜버나 ‘관종’ 네티즌의 부적절한 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가짜뉴스는 더 확산됐다. 그러나, 경찰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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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대표→대학병원 교수
6일까지 정민씨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공식적으로 밝힌 내용은 정민씨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사실뿐이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실종 장소인 수상택시 승강장 전방 20m 앞에 검정 물체가 물에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경찰관들이 손씨 시신임을 파악했다”는 내용을 기자들에게 알렸다. 전날 정민씨의 실종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진 이후 1주일간 공식 발표 내용의 전부다.
경찰의 브리핑이나 공식 서면 알림이 없는 사이 정민씨와 실종 당일 함께 술을 마셨던 A씨 관련 이야기가 인터넷을 떠돌았다. A씨는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다보니, 네티즌의 관심과 의심이 커졌다. A씨 가족의 직업에 대한 얘기가 대표적이다. 이른바 ‘카더라’가 쏟아졌다. A씨 아버지의 직업은 ‘대형로펌 변호사’에서 ‘대형로펌 대표’가 됐고, 이후엔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로까지 바뀌었다. 그 이면에는 사건의 실체를 감출 수 있는 힘 있는 인물이라는 의심이 깔려 있었다. 그로 인해 시민들의 공분이 더 커진 측면이 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니었다. A씨 아버지의 직업은 개인병원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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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니다"고 했지만, 믿지 않아
허위사실이 확산되자 당사자들이 나섰다. 지난 4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현재 온라인상에 강남세브란스병원 특정 의료진을 거론하는 루머는 사실과 다르며, 본원 소속 의료진 가족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A씨의 친척이 ‘전 강남경찰서장’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지목된 당사자는 직접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3일과 4일 의대생 손정민(22)씨 사건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네이버뉴스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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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나 조사의 확정된 결과만을 공식적으로 밝혀야 하는 경찰의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러나, 특정인의 명예가 훼손되거나 의혹을 키우는 방향의 미확인 정보가 확산하는데도 경찰이 방관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수사를 담당한 서울 서초경찰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직도 A씨의 아버지 직업을 놓고 온라인은 시끄럽다. “세브란스병원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주장도 끊이지 않는다.
“친구 A씨가 CCTV 제출을 거부했다”는 온라인상 허위 주장에 일부 언론이 팩트 체크를 해 보도를 했지만, 여전히 의심은 커지고 있다. 이를 진정시킬 수사기관의 공식 발표가 아쉬운 이유다.
4일 의대생 손정민(22)씨 사건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 [네이버뉴스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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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찾는데…“기종 안 알려줘”
정민씨의 시신을 발견한 민간구조사 차종욱씨 등 자원봉사자들은 사라진 A씨의 휴대전화를 찾기 위해 지금도 한강 변을 뒤지고 있다. 지금까지 아이폰 2대를 찾았지만, 하나는 A씨의 것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차씨 등은 A씨의 아이폰 기종과 색상도 알지 못 한 채 수중을 수색 중이다. 차씨는 “경찰에서 아이폰 기종이나 색상을 말해주면 특정하기 쉬울 텐데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수사기관의 공식 브리핑이 제한된 건 사실이다. 자칫 피의사실공표로 법적 책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 만들어진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는 인권을 침해하는 등의 오보가 실제로 존재하거나 발생이 명백한 때 그 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예외적으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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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사실관계 확인 먼저”
이에 대해 서초경찰서 측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아직 공식적인 브리핑을 하기는 이르다”고 선을 긋고 있다. 수사에 집중한 뒤 결론을 내는 게 우선이라는 뜻이다. 실수가 없도록 만전을 기하는 경찰의 태도를 비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지 경찰 스스로를 위한 것인지는 되돌아볼 시점이다. 명백한 허위사실이 진실인 것처럼 확산되고, 시민의 정의감이 자칫 명예훼손이 될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완벽’을 기하려는 태도가 ‘사후약방문’이 될까 걱정된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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