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가 없다. 언제 0원이 돼도 이상하지 않다. (회의론자)”
암호화폐 대장주 비트코인을 둘러싼 투자 전망이 양극단으로 치닫는다. 누군가는 기존 화폐·투자 패러다임을 뒤바꿀 ‘유망 자산’으로, 한편에서는 단타꾼이 득실거리고 거품이 잔뜩 낀 ‘투기 자산’으로 평가한다. 가격도 ‘널을 뛴다.’ 지난 4월 13일 사상 첫 8000만원(국내 기준)을 돌파한 지 열흘 만인 지난 4월 23일에는 5500만원 선이 붕괴되는 등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시황이 계속되고 있다.
혼란에 빠진 투자자를 겨냥해 금융사에서는 전에 없던 신상품을 잇달아 선보이는 중이다. 이른바 ‘비트코인 파생상품’이다. 직접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펀드부터 아예 ‘비트코인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ETF(상장지수펀드)까지 다양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인수한 캐나다 운용사 ‘호라이즌스’가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 인버스 ETF를 내놨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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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타이밍’에 인버스 ETF
▷비트코인 ETF는 두 달 만에 10억달러
비트코인 파생상품 시대 문을 열어젖힌 것은 캐나다 자산운용사 ‘퍼포스인베스트먼트(Purpose Investments)’다. 지난 2월 18일(현지 시간 기준) 캐나다 토론토증권거래소(TSX)에 ‘비트코인 ETF’를 상장했다. 상장 직후 한 시간 동안 8000만달러(약 885억원) 넘게 거래되는 등 하루 거래대금만 1억6500만달러(약 1826억원)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상장 두 달이 채 안 된 지난 4월 13일에는 자산 규모 10억달러를 돌파했다.
높은 가격 변동성에 힘입어 최근에는 비트코인 가격 하락에 베팅하는 ETF도 등장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캐나다 ETF 운용사 ‘호라이즌스(Horizons)’가 지난 4월 15일 비트코인 인버스 ETF를 TSX에 상장했다. 상품명은 ‘베타프로 인버스 비트코인 ETF’. 약자로는 ‘BITI’다.
BITI는 전 세계 최초의 비트코인 인버스 상품이다. 미국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서 거래하는 비트코인 선물 가격이 하락하면 투자자가 수익을 거두는 방식이다. 국내 증권사 해외 주식 계좌를 통해 한국 투자자도 매매할 수 있다. 별도 암호화폐 계정을 만들 필요 없이 투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속된 말로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BITI가 상장하고 불과 3일 뒤인 4월 18일 비트코인 가격이 전일 대비 최고 9%까지 떨어졌고 일주일 뒤인 4월 22일에는 13.3% 가까이 주저앉았다. BITI 상장 후 일주일간 비트코인 가격은 36.7% 하락했다.
반응은 당연히 뜨거웠다. 상장 첫날 14.66캐나다달러로 시작했던 BITI 가격은 지난 4월 23일 18.69캐나다달러를 터치했다. 불과 7영업일 만에 수익률 21.6%를 기록했다.
거래도 활발하다. 호라이즌스가 BITI와 같은 날 상장한 비트코인 ETF 상품 ‘HBIT’ 거래량과 비교하면 알기 쉽다. 상장 후 7영업일 동안 HBIT 일평균 거래량은 약 6827주. 같은 기간 BITI는 일평균 2만2523주 거래됐다. 비트코인 인버스 ETF 거래가 일반 비트코인 ETF보다 3배 이상 이뤄졌다는 얘기다.
스티브 호킨스 호라이즌스 최고경영자(CEO)는 “비트코인은 높은 관심에 비해 투자가 어렵다. 여기에 ‘오른다’ ‘내린다’ 등 투자 전망이 양극화돼 있다. 이번 비트코인에 선보인 ETF는 비트코인에 보다 쉽게 투자할 수 있는 상품으로 특히 인버스 ETF는 세계 최초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더리움 ETF까지…상품 다변화
▷JP모건은 비트코인 액티브 펀드 예정
암호화폐 파생상품 투자에 대한 기존 제도권 금융 관심은 점차 커지는 모습이다. 이미 2017년 비트코인 선물 시장을 개설한 CME는 올해 2월 이더리움 선물 시장도 개방했다. 비트코인 선물 한 계약당 0.1비트코인 단위(BTC)로 거래할 수 있는 ‘마이크로 비트코인’ 선물 계약 상품도 5월 선보일 예정이다. 기존 선물 한 계약 규모가 5BTC, 한화로는 약 3억원에 달해 개인 투자자가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최근에는 비트코인에 이어 ‘알트코인 대장주’로 불리는 이더리움도 ETF 상장에 성공했다. 앞서 세계 최초 비트코인 ETF 상품을 내놨던 퍼포스인베스트먼트를 필두로 이볼브, CI글로벌 등 자산운용사 3사가 캐나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이더리움 ETF 승인을 받고 토론토증권거래소에서 거래를 시작했다.
비교적 암호화폐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미국에서도 사뭇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피델리티, 골드만삭스, 반에크어소시에이츠, 위즈덤트리인베스트먼트 등 대형 자산운용사 8개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트코인 ETF 상품 승인 신청을 해놓은 상황이다. 최근 SEC 위원장으로 지명된 개리 겐슬러가 전임보다 암호화폐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기대가 높다.
피델리티·골드만삭스 등도
비트코인 ETF 승인 대기 중
월가를 대표하는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도 비트코인 펀드 판매에 돌입했다.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에 이어 그간 비트코인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밝혀왔던 JP모건까지 비트코인 시장에 진출한다. 글로벌 투자 3사가 모두 비트코인 펀드 판매에 뛰어든 셈이다.
모건스탠리는 지난 4월 월가 최초의 비트코인 펀드 ‘FS NYDIG 셀렉트 비트코인 펀드’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투자 진입장벽은 높다. 순자산 200만달러 이상 고액 자산가에 한해 최소 투자금액 2만5000달러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돈이 펀드에 유입 중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판매 이후 2주 동안 비트코인 펀드 2937만달러(약 328억원)어치가 팔려나갔다. 투자자 한 명당 평균 9만1208달러(약 1억100만원)를 투자했다.
미국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데스크’는 지난 4월 26일(현지 시간) JP모건 내부 관계자를 인용해 “JP모건이 이르면 올여름 비트코인 펀드를 내놓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JP모건 비트코인 펀드는 그간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가 내놨던 패시브 펀드 형태가 아닌 자산가들을 위한 액티브 펀드로 운영될 예정이다. 단순히 비트코인 가격 지수를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수익률을 초과하는 수익을 올리기 위해 펀드매니저들이 적극 운용전략을 펴는 펀드를 선보일 것이라는 의미다.
국내 운용 시장이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한화자산운용은 지난해 말부터 디지털 자산 공시 플랫폼 ‘크로스앵글’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매달 가상화폐 관련 보고서를 내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아직 국내에서는 암호화폐가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해 상품을 내놓을 수는 없지만, 미리 준비해놔서 나쁠 것 없다는 분위기가 감돈다. 기존 펀드나 ETF만으로는 업계 순위를 뒤집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향후 암호화폐 파생상품이 등장하면 시장 판도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크다”고 말했다.
[나건웅 기자 wasabi@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07호 (2021.05.05~2021.05.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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