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19년 전국의 아파트 거주자는 50.1%다. 서울의 경우 시민의 42.2%가 아파트에 거주한다. 굳이 통계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현재 '아파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1930년대 경성(서울)에 아파트가 많았다고 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하지만 당시 기록을 찾아보면 당시 아파트가 꽤 있었던 것 같다.
1938년 11월 6일 자 매일신보는 '최근 경성 시내에만 크고 작은 아파트가 30여 곳이 생겼고, 평양, 인천, 부산, 대구 등 소위 중요 도시로 약진하고 있는 곳에도 수없이 지어지고 있다. 특히 샐러리맨이 많은 은행이나 회사를 상대로 아파트 건설이 늘어가고 있는데, 그곳에는 30∼100명의 대집단이 모여 생활하는 까닭에 풍기문란과 위생문제가 대두'된다고 보도했다.
앞서 1937년 6월 경성소방서는 아파트 형식을 갖춘 39곳을 보건위생시설 점검 차원에서 조사했다며, 아파트에 거처를 둔 이들을 1천35명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1930년대를 '아파트 시대'로 명명하고 탐구한 '경성의 아빠트'(집)가 최근 출간됐다.
책은 도대체 경성 어디에 아파트가 있었을까, 당시 사람들은 아파트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았고 규모는 어땠을까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경성 아파트에 관한 다양한 질문에 대해 답을 찾는 여정을 보여준다.
책에 따르면 1930년대 경성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 아파트는 모두 70여 곳이다. 호수가 가장 적은 6호의 남산동 미쿠니아파트부터 82호나 되는 채운장아파트까지 규모는 다양했다.
물론 당시의 아파트가 요즘의 아파트와 같지는 않았다. 살림집 형태를 갖춘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독신자가 생활하는 1칸 방이었다. 독신자가 주로 이용하는 시설이란 인식 때문에 풍기문란의 대명사로 지목되기도 했다.
대개 교통 여건이 좋은 도심에 4층 규모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건축됐으며, 1층에는 오락장, 공동식당 등을 두고, 거주자와 비거주자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1층 마켓, 옥상 테라스와 전망대를 갖춘 고급 아파트도 있었다.
저자들은 책에 당시 사람들의 아파트에 대한 인식, 주 이용자와 경영자, 아파트 시설과 규모 등 아파트와 관련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담았다.
주거론과 주거문화사를 연구하는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 도시와 마을, 집과 공간을 만들고 가꾸는 권이철 건축가, 서울에 살며 한국의 여러 곳을 답사한 오오세 루미코 자유기고가, 한국의 아파트단지와 건축공간에 대해 연구하는 황세원 중앙대 교수가 함께 책을 썼다.
저자들은 신문과 잡지, 국가기록원과 국사편찬위원회, 일본 국립도서관, 미국문서관리보관소 등에서 당시 아파트 관련 자료를 찾아 분석했으며, 1930년대 전화번호부 4권에 기재된 아파트 관련 기록도 꼼꼼히 살폈다.
특히 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던 아파트 70여 곳을 지도에 표시하고, 개별 아파트의 특징도 정리해 실었다.
488쪽. 2만7천원.
dklim@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